● 이번 채동욱 사건을 보면서, 나는 사실 깊이있게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는 그 아이가 채동욱의 친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팩트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가 일치감치 감지되었으면서도, 검찰의 국정원 선거개입 기소 이후에 제기된 것은 분명 뭔가의 모종의 작용(作用)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째든간에,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 이제 조선일보의 웃기는 이중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이 조선일보의 보도로 시작되었고, 그것이 순수한 취재활동에서 얻은 산물인지, 청와대의 귀띔에서 얻은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조선일보는 현재 이 문제에 사운(社運)을 걸고 있다는 느낌이다.
● 사실 친자로 확인되면야 조선일보의 승리가 되겠지만, 만일 친자가 아니라고 할 경우 조선일보가 져야할 책임의 크기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2009년 11월 19일자 신문의 39면에 박정훈 사회정책부장의 칼럼을 게재하여 채동욱 사건과 비슷한 사건에 대해 밝혔던 입장을 보면, 현재의 조선일보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당시 환경부장관인 이만의가 혼외로 딸을 하나 두었는데, 이 딸이 친자확인소송을 내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인 한나라당까지도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당시 조선일보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라는 칼럼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은 그런 사생활의 문제가 장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칠 공적인 이슈냐?”면서 “공직자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라고 하였다.
● 언론은 여론을 반영하고, 여론을 조성하기도 하며, 여론을 주도하기도 하는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그런 언론이 원칙없이 자신들의 이해득실에만 매달려 매번 자신들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어버린다면 이미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이미 채동욱 총장이 이번 정정보도 소장에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채동욱 총장의 혼외아들의 친자 유무를 떠나, 우선 이 문제를 제기한 조선일보의 이와 같은 이중성에 대해 조선일보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여전히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나 안된다”는 것인지, 조선일보는 이 문제에 대해 해명하고, 만약 지금 채동욱 건에 대한 입장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과거 조선일보의 사회부장을 내세워 저런 개같은 글을 쓴 전력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공직자의 사생활, 보호 되어야 하나? 모조리 까발리고 공개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