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나온 말이다. 즉 프랑스 혁명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민중의 실망을 노랫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가, 우리의 삶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혹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이 노래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네”라는 말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 그 자체를 싫어한다. 일부분은 정치를 혐오하기 까지 한다. 그렇다고 해도 즉 정치가 혐오스럽다고 정치 그 자체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대안은 정치를 정치답게 변화시키는 것뿐이다.
누가 이 역할을 할 것인가?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기에는 그들은 너무나도 멀리 갔다. 즉 한국의 정당은 이념이나 정책보다 선거에서의 승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선거 전문가 정당, 무색 무취한 포괄적 정당(보수든 진보든, 가진 자든 가지지 못한 자든, 모두 포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것(정치를 정치답게 변화시키는 것)을 지식인들에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지식인이 없고, 언론이 자리 잡고 있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이없게도, 언론이 만들고 주도하는 이슈와 의제의 틀 안에 동원된 글쟁이일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용지식인 또는 진영논리에 스스로 갇힌 내시언론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현상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민중의 욕구이다. 즉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욕구도 크다는 말이다. 민중에게 변화와 열망을 표출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정치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정당 및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정당 무용론은 위에서 언급을 하였고, 정치인들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 역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은 다 죽어나자빠져도 자신만은 영원히 정치세계에 남아 있기만을 바란다.
대통령에게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대통령이 국민들만 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대통령도 역시 언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자신의 정책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언론에서 어떻게 평을 할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답은 역시 민중에게 있다. 정당이 정당답고, 나아가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것도 역시 국민의 힘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원칙도 아니고, 신뢰도 아닌 법치뿐이다. 박근혜대통령도 이제는 말보다는 법을 앞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