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에는 분명한 원칙들이 있다
이재오가 남들보다 유독 더 열렬히 민주화투쟁에 나서고 누구보다 많이 고초를 겪게 된 것은 그의 촌놈기질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젊은 날 그는 남들보다 약지 못했고, 남들보다 무서움이나 두려움에 둔감했다. 이런 겁 없는 성격은 아마도 일월산 깡촌에서 칠흑 같이 깜깜한 밤과 이야기하고, 들에 누워 별을 헤아리고, 소를 먹이면서 생겨남 것이 아닌가 싶다고 그는 말한다.
겁 없음은 사실 그에게는 실용적 장치였다. 전깃불도 없는 시골에서 밤에 소를 먹이는 일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지만 밤에 소를 먹이지 않으면 소가 굶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낮에 소를 끌고 학교에 갈 수도 없으니 학교를 작파하고 마냥 소에게 꼴을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현실에서의 최선의 선택, 그것이 바로 실용이었다.
실용이라는 것이 때로는 원칙이 없는 원칙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추상적 이념이나 공허한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두고 미래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되는 실용에는 분명한 원칙들이 있다. 현장 중심, 일 중심, 실천 우선의 원칙과 같은 것들이 바로 실용주의의 중요한 원칙들이다. 반면에 탁상공론, 명분, 이론과 해석 등등은 실용이 피해야 할 덕목들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 사회, 교육, 문화 등등의 모든 면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한 동시에 위기 앞에 놓여 있기도 하다. 글로벌 수준의 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고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초석을 지금 당장 쌓아야 한다. 내일이면 그런 초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초석 없이는 대들보도 세울 수 없고, 대들보 없이는 초가집도 짓지 못한다. 그가 마냥 초연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실용의 정신을 통해 어떤 초석을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지 그가 먼저 나서서 제안하고 토론의 장을 만들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먼저 실용의 정신으로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