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을 고집하면 대단히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즉 한번 보수는 영원한 보수이어야 하고, 야당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정부의 일에 반대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경직성!
인간의 사고는 유연해야 한다. 그리고 사안마다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 또 한 번 그렇게 본 것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과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과정이란 흘러가는 중에 변하기 때문이다. 유연성!
필자는 현역정치인은 아니지만 일반인치고는 대단히 정치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은 필자에게 보수, 진보 양쪽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고 종종 묻는다. 그 때마다 필자는 대단히 난감하다. 왜냐하면 필자 스스로 보수인지, 진보인지 확실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로는 나는 나 자신에게나 특히 타인들로부터 이념의 굴레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싶은 심정이 짙다.
본론으로.....
통일이니, 평화니, 전쟁이니 이딴 것(?) 다 집어치우고..... 오늘의 북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모두 이 부분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을 해보자) 강력응징이 보수인가? 심지어는 전쟁불사, 선제타격, 북진통일 등등의 말을 해야 애국자인가? 반대로 대화라는 말을 하면 종북좌파인가?
사실인즉, 이 때 이념이 나오면 틀려먹었고, 원칙이 나와야 되는 것이다. ‘대북전략’의 원칙말이다. 이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젝트]다. (이 부분에서 평소 필자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약간의 혼란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예견하고 있다.)
필자는 알려졌다시피 ‘반박근혜 부류’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박근혜를 몰아붙인다. 심지어는 필자를 ‘종북좌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내가 박근혜의 모든 것을 비판한 적이 없다. 나는 그때 그때 발생되는 사안에 대해서 비판을 했다. 그리고 충분히 박근혜는 나에게 비판받을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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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뢰 프로젝트]를 말해볼까? 좋은 정책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좋은 말들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만 들어있다는 것이다. 즉 “도발하지 않으면 신뢰하겠다” 누가 이런 소리를 못하는가? 문제는 도발을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반도 신뢰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 말한 경직성이다. 즉 나는 유연해지라고 비판을 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작금의 대북관련 문제에 답이 어디 있나? 없는 답을 찾아 헤매니까 문제는 점점 어렵게 꼬여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당장 봐라! 통일부장관 말과 국무총리의 말이 다르고, 급하니까 대통령이 나타나서 말의 정의를 내려주고.......(지금 국어시간인가?)
크게 봐야한다.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그것도 그냥 징징거리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면서 울고 있다. 무조건 달래야하나? 사탕을 주면서 오냐오냐하고......... 아니면 우는 아이의 등을 마구 때려서라도 울음을 그치게 만들어야 하나? 왜 우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북한은 울고 있다. 그리고 남한은 “대화제의는 유효하다. 울음과 관계없이 인도적지원은 할 용의가 있다.” 이게 말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너 왜 우는지 내가 알고 있다. 일단 울음을 그쳐라. 그리고 대화로써 차근차근 풀어가보자”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것 아닌가?
왜 옆에서(반공보수) “달래지마라. 때려라”고만 하는가? 정작 정부는 때릴 생각이 전혀 없는데...... 진보가 말이 없다고 한다. 과연 진보가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하는가? 아니면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말처럼 우리 정부가 북을 때릴까봐 겁이 나서 말을 하지 않을까? 둘 다 틀린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