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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 13-09-16 18:00
"아버지! 훗날 맥주 한잔 해요!"
 글쓴이 : 휘모리
조회 : 2,629   추천 : 1   비추천 : 0  
정확히 10년 전 나의 선친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회갑을 한달 앞둔 시점이요,결혼을 약속한 여친(집사람)을 소개시켜드리지도 못한 상태였다. 병세가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돼 난 영정 사진을 챙기느냐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불효자가 부모보다 먼저 떠난 자요,둘째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란 말이 있을 만큼 먼 길을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눈물이 원래 많던 난 내가 살아오며 흘린 눈물의 몇 곱절을 쏟아내며 그간 불효했던 일들을 후회했다. 아니 용서라도 빌고 싶었다.
 
평소 약주를 즐기셨던 아버지는 "저녁에 반주 한잔 할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귀가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 바쁜 막둥이와의 대화를 원하셨던 거다. 허나 난 지인과의 술자릴 생각해 "내일 약속 있어여,드세요!"라며 거절하길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그래 피곤할 텐데 쉬어라!"라고 말씀하시며 혼자 약주를 드시곤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불편하거나 대화가 단절된 사이는 아니였다. 2남 1녀의 막내인 난 일찍 결혼한 누나와 형보다 아버지와 정도 깊었고 추억 또한 많았다. 하지만 벌여 놓은 일들이 신통치 않자 초조해진 난 집에 가면 말이 없는 목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에게 눈치를 주며 "그냥 놔두라"는 사인을 수차례 보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우거지상을 할 일이 아니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삼남매 모두 직장 생활을 하던 때라 조문객은 상당히 많았다. 처음 당한 일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상주는 원래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마시는 게 아니다!"라고 하시며 중심을 잡아주셨다.
 
첫날을 보내고 둘째날이 되자 입관이 우릴 기다렸다. 경험해 본 이는 알겠지만 입관은 장례식 눈물의 절반 이상을 쏟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작지 않은 체구셨는데 누워 계신 아버지는 평소보다 훨씬 작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아버지의 두 발을 잡고 "죄송합니다 아버지!"를 연발했다. 말리던 말던 난 울부짓었고,아버지의 발을 잡고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와 이별한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단 걸 알았다면 더 잘해 드릴 걸" 혼자 통곡을 하며 곱씹었다. 허나 이미 아버지는 먼 길을 예약한 분이고,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부탁받은 아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반쯤 나간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고,입관식은 그렇게 끝났다.
 
당시 누나와 형은 한 두살 터울로 두명씩 자녀를 두고 있었다. 내겐 조카가 된다. 헌데 형이 난데없이 자신의 처형댁에 맡긴 아들(장손)을 찾기 시작했다. "와서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절을 하라"는 의미였지만 "난 6살 난 애가 뭘 안다고,이 상황에서 자식 생각이 날까?"라며 화를 삭히고 있었다.
 
헌데,어라! 누나도 시댁에 맡긴 딸과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슬픔이야 누나고 형이고 같겠지만 임하는 자세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결혼도 안 한 총각이였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려 나도 아들을 둔 아빠가 되었다. 늦게 결혼한 건 아니지만 계획을 하다 막상 아이를 가지려니 생기지 않는 게 아닌가? 난감했고 초조했다. 병원에 가볼까 수차례 고민하다 고대하던 아이가 생겼고,서른 여섯이라는 적잖은 나이에 아빠가 됐다. 늦게 본 자식인 만큼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실감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 신세를 졌다. 생전 처음인 병원 생활은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 겨울이라 눈도 오고 길도 미끄러워 가족이외는 알리지도 않았다. 헌데 내가 아프면 부모님 생각이 먼저났던 총각 시절과 달리 말 수가 곧잘 는 아들이 자꾸 떠올랐다.
 
먼데서 면회 오신 어머니도 감사하고 반가웠지만 1주일만에 집사람이 데리고 온 아들은 내겐 광명과도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빠! 아빠!"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나의 귀가를 기다리셨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이거구나! 이 감정이구나! "난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위로 올라오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도 누나,형의 자식에 대한 걱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새 3일에 한번은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자주 찾아 뵙는 것이 제일이지만 "어머니 저 몸 건강히 잘 지내요"를 확인시켜드리는 게 두번째 효도라는 걸 아들을 통해 깨우쳤기 때문이다.
 
"아버지! 손주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나,하늘 나라에서 이미 보셨을 것이라 믿고 싶어여! 훗날 좋아하시는 맥주 원없이 함께 마셔여! 아버지! 사랑합니다!"
 
<휘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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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13-09-17 21:07
답변  
휘모리님, 가슴 찡한 사연이네요~
다가오는 추석에 온가족 만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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