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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5 16:59
이재오 검증 - 이재오의 꿈, 그리고 인생역정 (4)
 글쓴이 : 시사랑
조회 : 1,767   추천 : 0   비추천 : 0  
 
꿈의 좌절과 또 다른 꿈, 민주화 운동
 
1969년 군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모교에 복교하지 못했는데, 3선 개헌이 있었고, 뒤이어 박정희의 3선을 위한 대통령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교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농촌운동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처음으로 삶의 좌절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입대 전 혹시 몰라 지원해놓았던 중앙농민학교라는 곳에서 그를 받아 주었던 것이다. 중앙농민학교는 말하자면 계절학교 같은 곳이었는데 후에 국민대학교로 합쳐졌다. 당시에 중앙대학교 학장이었던 박근창 선생의 주선으로 그곳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졸업 후에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 들어가서 교편을 잡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1971년 초에 천관우, 함석헌, 이병린, 김재준 4인을 대표로 하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가 결성되었다. 이 조직에 참여한 면면들은 70년대 이후 이른바 민주인사, 재야인사로 불리게 되는 분들이다. 그리고 1971421일에는 YMCA에서 419세대와 63세대들로 민주수호청년협의회(민수청)’가 결성되었다. 백기완, 김승균, 최동전, 정수일 등이 참여 했으며, 이재오가 회장을 맡았다. 그 조직은 10월 유신 직전까지 활동하였다. 그것은 70년대 이후 재야청년단체의 효시였다고 한다.
 
민수청 회장을 맡는 동안 처음으로 장훈고등학교에 정식발령을 받았다. 그는 그 학교에서 교사를 할 때 처음 구속되었다. 197210월 유신 반대 배후 조종을 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의에 대해 깨달아가던 도중에 투옥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붙잡혀간 것이었다. 1심에서 5년 구형에 3, 2심에서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지난 일이라 쉽게 말하지만 감옥은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파괴를 참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다섯 번에 걸쳐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자신이 뭘 잘못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감옥에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다섯 번 모두 주변에서 터져 나온 사건이 그에게로 번지고, 그것을 책임지느라 감옥에 갔다. 특히 마지막으로 투옥된 1989년의 일은 정부의 신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시범케이스로 잡혀 들어갔다.
 
그는 좌익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독재에 맞서 통일운동을 했던 것이 아니고, 진보에 반대하면서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보수당의 의원으로 활동했던 것이 아니다. 좌든 우든, 혹은 진보든 보수든,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상식을 벗어난 불의와 부패였다고 적고 있다.
 
이재오는 삶에서 이()를 보면 그것이 정의(正義)에 합당한가를 먼저 생각 해 왔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가난하게 살아도 떳떳하게 사는 길이 정의롭게 사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두웠던 시절 온 젊음을 바쳐 30년간이나 무모한 투쟁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하늘높이 치켜들었던 그의 오른팔은 다행히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내릴 수 있었다.
그의 민주화의 꿈은 자연스럽게 통일과 민중의 꿈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서 민중당이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선거 참패로 인해 좌절과 절망을 안겨다 준 꿈으로 그에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꿈은 자신이 지금의 꿈을 꿀 수 있게 한 큰 원동력의 한 부분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리라 생각되어 진다.
 
만약에 민중당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하고 문득 생각할 때가 있다. 민중당은 어디까지나 당시 기존 정당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이었지, 정치이념이나 노선에서 지금의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당 체계와 이념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당시 주류 정당이었던 신한국당이나 평민당은 정책이나 이념적으로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보수당이었기 때문에 상대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진보적인 정당건설이 민중당의 목표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고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당의 실패가 그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현실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먼저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정치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계층과 계층 사이에서 불합리한 요소들을 조율하고 서로의 양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통합의 리더십과 바람직한 선진정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조율과 통합이 아니라 특정 계층의 대리인에 머물러서는 결코 현실정치의 벽을 넘을 수도 없고, 진정한 변화와 개혁을 달성할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민중당은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다.
 
개인이 행복할 수 없는 나라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뛰어들어 결국 모든 것을 바친 이재오, 그의 인생역정과 그 시작을 돌이켜보면 한 청년이 대학에서 꿈꾸었던 꿈이 좌절되면서 사회의식이 성장하고, 다음으로 행동을 실천하게 되면서 지금의 그가 된 샘이다. 개인이 특출하거나 심각한 의식이 있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사회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를 그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사회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아마 농촌지도소 같은 곳에서 농사짓고 아이들 가르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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