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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 16-05-08 13:46
난세 빈농자식으로 태어나 제국을 세운 주원장.
 글쓴이 : 남해어부
조회 : 2,588   추천 : 0   비추천 : 0  
         빈농아들로 태어나 난세극복 개국군주가 된 영웅이야기.
위 셋 중 누가 주원장이 될까?
 
난세는 높은 자리 있는 자는 가렴주구로 배 터져 죽고 없는 자는 굶어죽는다.
 
어느 시대고 간에 난세는 비슷비슷했다. 고대 중국의 난세는 암둔한 황제에 조정은 간신배로 득세했다. 법이 무너져 도적떼가 날 뛰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권력자가 무능해 단세포두뇌 측근에다 법은 있어도 서민계층만 해당되고 비적 떼가 기승떨어 민초의 등골 뽑는, 균형 무너진 막장사회는 대동소이하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 했는데, 지금은 씨알조차 보이질 않고 대신 배후세력이 뒤봐주는 역도후계들만이 두각을 나타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이다.
 
민초가 기다리는 영웅은 어디 있는가? 눈앞의 이익만 목말라 한다면 그는 영웅이 아니라 소인배다.
 
명의 개국군주 주원장은(1328~1398)안휘 성 빈농자식으로 태어나 17세에 황각에 들어가 탁발승한 기록이 있다. 8형제 막내로 중 팔이라 불렀다. 워낙 총명해 원나라쇠망을 깨달고 25세 홍건적두령 곽 사흥 밑에 들어갔다. 인재 알아보는 눈을 갖은 곽 사흥은 즉시 그를 수하에 거둬 관군과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자 양녀와 맺어줬다. 그가 죽자 그 무리의 두령이 됐다. 그 과정도 그리 간단치 않으나 여기선 지면상 생략~.
 
당시 원 나라는 국운이 쇠잔해 부패하고 간신배가 끓어 환관이 국정을 좌우하는 환관정치로 나라는 종말로 치닫고 있었다. 남쪽지방을 소외시킨 비호남정책에 불만을 품은 패거리가 외세와 손잡고 정치판을 개판 쳤다.
 
이를 제어능력 없는 원조정은 세수가 들어오질 않자 무기력상태로 나라는 붕괴 초읽기로 들었다. 어느 시대나 군주가 혼미 치세를 열지 못하면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치 천재지변이 일었다. 비적 떼가 날뛰고 민심은 흉흉해져 어려운 서민 삶은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사기꾼패거리로 나라가 들끓는 난세가 됐다. 이럴 때 용기 있는 인물이 일어나 난세에 영웅이 나온단 말이 생겼다.
 
조정의 무기력에 반역도를 척결할 의지가 없어 홍건적이 사방에서 일어나 약탈을 감행, 민초는 어느 쪽에나 가담해야 살게 됐다. 강남은 진우량이, 동쪽(황해)은 장 쑤을 근거로 한 장사성이란 소금장수 출신이, 중간은 주원장이 금릉(난징)에 웅거. 원나라는 실제적 3토막으로 나눠 패권을 다퉜다. 소위3당 체제가 된 것이다.
 
진우량(1271~1368)은 강서 호남. 북 중심으로 부자를 털어 나눠 주는 방법으로 세력을 구축했다.1357년 진우량은 고위직을 매수하는 방법으로 관료 직 에 들어섰다. 진우량은 모사에 능해 무자비하게 죽이는 수법으로 직원을 통솔했다. 그에 잘못 보이면 높은 곳서 던져 죽였다. 귀여워하는 아들 외엔 누구나 죽이는 잔인성이 있었다.
 
진우량은 대권을 잡으려 군비강화에 여념 없었다. 당시는 엄청 큰 함선 수십 척을 건조했다. 한편 동지나해 장사성을 회유 손잡고 천하를 양분하자 꾀었다.
 
주원장은 열린 인물이었다. 금릉(남경)을 근거로 사방1.000리가 자기영토로 들어오자(금릉점령에도 기막힌 사연이 있으나 생략),군왕의 위치를 자각. 인재를 영접 천하 먹을 준비를 개을리 하지 않았다. 위대한 인물은 하나같이 인재를 중시했다.
 
이 선량. 유기 같은 인재를 초빙하고 민심 얻는데 주력했다. 군대의 사기를 중시 군율위반은 지휘고하 막론 발본색원 가차 없이 참수했다. 특히 공과를 엄격히 했다. 그는 사람 꿰뚫어 보는 안목의 소유자로 세인 입에 오르는 유명인사는 믿지 않았다.
 
1363년 진우량이 거함 수십 척에 군소군함 수백 척60만 군대를 이끌고 주원장을 치려 장강에 진격, 파양 호에 침입했다.
 
전쟁준비가 덜 댄 주원장은 놀라 작전회의를 연다. 주원장 병력은 20만에 불과하고 군선을 1척도 없었다. 적의 거대병력에 겁낸 수하들은 의론이 분부하고 사분오열됐다. 협상으로 평화를 유지하잔 측과 항복하고 물러나 후일을 도모하잔 측으로 양분되니 군대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주원장은 알았다. 항복해 진우량수하로 들어가도 자신과 부하를 살려주지 않는단 걸, 자신을 살려줘 부하삼기엔 주원장은 너무 큰 인물이란 걸 진우량은 알고 이 사실 또한 주원장도 알고 있었다.
 
진우량의 군세를 겁낸 대다수 장수가 평화를 내세워 항복을 생각할 때 남옥이란 직급 낮은 병사가 앞에서 소리쳤다.
 
전쟁의 승패란 신병기와 군대수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활 건 선재공격으로 이길 수 있다외쳤다. 노련한 장수들이 비웃고 물러나자, 주원장은 남옥을 불러 진우량이 쳐오는 길목 홍도 성을100만 지켜주면 그동안 군세를 강화, 전쟁서이길 수 있다.” 라고 병사6만을 주며 남옥을 장군으로 임용해 홍도 성에 출진시켰다.
 
남옥은 과연 용맹했다. 진우량부대 20만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렷다. 병사보다 앞장서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격전 중4번이나 칼을 맞고 쓰러져 주위선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나 돌격하는 정신의 소유자였다.
 
두 다리가 부러져 성루에 자기 몸을 밧줄로 묶고 지휘했다, 홍도 성108수비에 성공해 주원장 믿음에 부응했다. 그사이 주원장은 전쟁준비를 마치고, 작은 성이라 얏 보던 홍도 성 전투서 연일 패해 사기가 겪인 진우량군대를 어렵게 꺾었다.
 
열린 지도자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으로 신하를 등용 대업을 이루나, 닫힌 지도자는 인재란 별 게 아니고 사람은 다 비슷비슷해 명령만 잘 지키면 된단 생각으로 충성위주로 등용했다.
 
그런 신하는 평화 시는 그럭저럭 넘기나 국가위급 상황이 오면 무능이 곧 들어났다. 무능측근은 두 손 놓고 듣기 좋은 말만 하다가 무방비 상태로 변란에 속수무책이다.
 
진우량이 책략위주 월등히 우세한 군대를 가지고도 파양 호해전서 진 것은 주원장의 사람 꿰뚫어 보는 인재등용에 진 거다. 열린 지도자 밑엔 깨어있는 신하가 있다. 신병기와 병사수가 많다고 전장에 꼭 승리한단 보장은 없다.
 
위 두 영웅에 비해 동쪽 평강에 웅거한 장사성은 어떤 인물이었나?
장사성(1321~1367)은 동지나장쑤 성 다펑 현 출신 염전주인 장사치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업회장이다. 그가 출사해 권력을 잡아 오 이라 칭했다.
 
주원장이 열린 지도자라면 장사성은 그야말로 닫힌 암 닭이다. 장사성은 소금밀매로 돈 번 거부였다. 그 당시 소금은 조정서만 취급하는 국가 중요기간산업이나 무능해진 조정의 통제가 없어지자 장사성은 소금을 임의로 각지 팔아 떼돈 벌었다.
 
기업CEO로 당연히 실용주의를 택해 숫자와 외형에 치중했다. 유명인 우대정책으로 서당훈장(대학교수)을 측근에 임용했다. 훈장이란 학문을 단편적 이해 경향이 있다. 이론엔 능하나 세상물정에 어 둬, 치세근본을 꿰뚫어보기 보단 탁상공론에 머물기 쉽다.
 
장사성 패는 주로 서당동문에 뇌물 바친 교수로 구성했다. 실용주의는 이익을 중시한다. 오랜 세월 염전 업을 하다 보니 날씨만 좋고 부지런하면 돈 번단 직업관이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게 됐다. 사람노동력은 거의 비슷해 별 인간 없단 인식을 하고 있었다.그러다보니 평범한 사람으로 채워진 측근참모는 군주찬양대 밖에 하질 못했다.
 
항시대세 따르다보니, 국민원성 받는 패거리를 우두머리로 고관을 삼는 이색치세를 폈다. 그 이유 묻는 주위에 세력가진자. 우대하는 원 조정 등용문을 본받는 대세정치라 했다. 비슷한 경우는 그 때만 있는 건, 아니다?
 
난세에는 인재가 절실하다. 지도자란 때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릴 경우도 생기나 CEO장사성은 이익계산은 재빠르나 정치 감각에 따른 과단성엔 우유부단했다.세상만사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 생각하는 얼간이였다.
 
소금밀매로 번 돈을 밑천으로 난세를 만나 권력을 잡자, 우선 자신염전을 독과점으로 만들어 막대한 재정적인 수입을 올리자 수도의 작은 개천을 호수로 만드는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조정보다 더 호화로운 유람선을 띄워 밤낮으로 연회를 열어 시와 음률에 취했다. 난세에 임의로 태평성세를 노래했다.
 
신하와 원로가 간하면군주는 여유를 보여야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한다.”며 성공한 자신의 생활철학을 신념으로 내세워 오히려 설득했다. 그는 활줄에 목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은 잘하고 있단 확신을 갖던 칠푼이었다.
 
적의 도발을 덮어주는 게 난세의 무난한 처방이라며. 영토를 지키는 게 군주의 의무인 것 관 정반대의 논리를 시해했다. 간자들의 방화로 도성이 혼란에 빠져도 책임지는 자 없었고,“ 이는 자연재해라며 국고로 메 꿨다.” 이런 정도니 그에게 전쟁예기는 금기에 속해 훗날 주원장이 쳐왔을 때도 아무도 급보 알리는 자가 없었다. 수도에 적이 바짝 닥아 왔을 때 비로써 알게 됐다.
 
당연히 패전하고 사로잡혀 주원장 앞에 끌려나와 나라망친 패장이 왜 죽지도 않았냐?”고 힐난받자 목맨 줄이 끊어져 죽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주원장이 든든한 활줄을 건너 줘 비로소 죽었다.
 
그에게도 대업을 이를 기회는 있었다. 진우량과 패권을 다투는 파양 호 전투로 주원장이 군대를 몽땅 동원, 수도금릉(현 난징)을 통째로 비워 이럴 때 작은 군사를 동원해 공격하면 적의 수도를 간단히 취할 수 있다는 간언이 있으나 우유부단한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도리어 상대를 설득하다. 천재일후의 기회를 놓쳤다. 그런 성품을 주원장은 미리 알고 있었다. 장사성은 어렵게 쌓은 거만의 부를 1367년 주원장에 통 채로 넘기고 아쉬운 이승을 하직했다.
 
주원장은 두 패의 강적을 패망시키고, 원의 수도 북경(베이징)에 눈길을 돌렸다. 수하 장수중 서달 장군을 출정시켰다. 1388년 수도베이징이 함락됐다. 아니 반란군이 온단 소문에 환관내시들은 달아났다. 몽골영웅 칭기즈칸손자 구비라이 칸이1215년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원 나라를 세운지 150년 만에 원은 무너지고 대명을 세우니 주원장나이41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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