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를 배려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역지사지는 "상대의 처지(處地)를 바꿔 생각하란" 의미고,처지의 뜻이 타인의 형편이자 살아가는 터전을 의미하므로 "아랍인과 에스키모인의 생활 방식은 다르다"를 인정하는 게 역지사지의 출발인 셈이다.
허면,한자 문화권이지만 한국이나 중국,일본 또한 "유사하면서 다르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역지사지가 통용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은 한국인이 식사할 때 얼굴을 숙이고 먹는 걸 "더럽다"며 조롱한다. 그도 그럴 게 중국인은 국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한 대다수 요리가 튀기거나 볶음이므로 젓가락으로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중국인의 젓가락은 한,중,일 가운데 가장 길므로 음식 가까이 갈 일이 적다. 그러니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인이 수저로 떠 먹는 걸 "개가 음식에 코를 박고 먹는 것"과 유사하다며 비아냥 대는 것이다.
반면,한국인은 중국인이 밥을 들고 먹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에 가본 이는 알겠지만,중국인은 우리 같은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다. 국물 전용 수저가 있긴 하지만 밥을 먹는데 쓰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중국인들은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퍼(?)먹는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들고 먹는 것도 볼썽사나운데 젓가락으로 삽질하듯 넣는 모습은 그 자체가 코미디다.
이에 반해 일본인은 어떤가? 그들은 한,중의 혼합형이다. 면요리를 즐기는 그들은 한국인과 유사하게 얼굴을 박고 먹고,밥은 중국인처럼 들고 먹는다. 한마디로 양수겸장(兩手兼將)인 셈이다. 역시 모방의 귀신들은 다르다.
여기까지가 한,중,일 식탁 예절의 차이다. 문제는 일부 지식인이 한국인의 식탁 문화를 조롱한 서양인과 중국인의 언급까지 인용하며 "식탁 문화를 바꾸자"는 궤변을 편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소양을 고치자는 걸 누가 반대하겠나? 하지만 몇 천년 이상 전해온 우리의 식탁 문화가 마치 역지사지가 부족한 삼류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삼지창(포크)으로 쑤셔먹는 양놈들과 비교하는 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가령 "한국인의 식사 시간이 서양인보다 빨라 소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지에 반대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허나 "음식에 고개를 숙이고 먹는 것도 버리자"는 설레발까지 친다면 얘긴 달라진다. 한마디로 접목을 넘은 추종(追從)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등산복 문화를 보자! 얼마 전 중국의 기관지 격인 환구시보는 "한국인은 가까운 산에 가는데 등산복으로 완전무장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수의 한국 언론은 이를 앞다퉈 인용했다.
환구시보가 "등산복 사랑이 유별난 한국인이 희한하다"며 보도한 건 이상할 게 없다. 비싼 브랜드로 도배하고 동네 야산을 찾는 건 나조차도 반대한다. 헌데 한가지 간과한 게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있으며 산에 갈 때만 입는 특수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산복 점퍼를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은 고전이 된지 오래고,버스 기사의 다수가 가벼운 등산복 차림인 건 이제 우리에겐 친숙한 모습이다. 어디 그뿐인가? 동네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5할 이상은 등산복 차림이다. 과거엔 트레이닝복이 주류였으나 그자릴 등산복이 대신하고 있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렇듯 한국인이 등산복을 수영복이나,스키복과 달리 평상복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매한다는 걸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외신(外信)을 쫒아 '허영에 쩌든 한국인'처럼 매도한다는 건 가당치 않다.
나라마다 문화가 있고 식탁 예절이 있는 법이다. 오죽했으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까지 있겠나?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상대 문화를 인정하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역지사지의 본질이다.
우리의 부족한 공중도덕을 비판하는 것과 다름을 불인정하는 건 천양지차다. 한국인은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중국인과 서양인을 해괴하게 보지 않는다. 헌데 왜 우린 저들을 의식해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은 역지사지를 아는 민족인데 지금 누가 누굴 비꼬나!
<휘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