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은 왜 “3뿌리를 조심하라” 했을까? 인간 삶에 있어 3뿌리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있는 건 모두 지체 높은 양반에게 수탈당하고 거기다 입조심까지 하지 않으면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몰라 “스스로 자유를 속박하란” 경계의 말은 개돼지들의 숙명일 뿐이다.
그러나 “입은 나오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입은 먹는 기관이다. 먹는 게 곧 사는 거며 인간을 위시한 모든 동물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하다못해 【인류사는 먹지 못하는 곳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이다.】 라고 역사학자는 말한다.
현대에 있어 먹는 다는 것은 곧 빵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싸움도 정치판의 다 당간 싸움도 먹히느냐? 먹느냐? 로 규정하는 걸 보면 먹는단 의미는 포괄적이다.
그만치 먹는 게 중요하다면 아무래도 식성 좋은 동물이 유리할 것이며 매기입이 중요하다. 지금까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이 생존의 우선권이 있었다면 앞으로 전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우리 근대사는 식성 좋은 분들이 모든 걸 먹어치웠다. 그들 역시 먹히느냐? 먹느냐의 싸움판에 일단 승자는 정리됐다. 그러나 승자필멸이라 했다. 재앙은 웃으면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자만하고 언제까지나 주판알만 튀기다보면 불시 목에 올가미가 걸려 먹히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지면상 2뿌리는 다음 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