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중후반을 장식한 제갈량(諸葛亮)은 전략과 지모 뿐아니라 주역과 기문둔갑,관상의 고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동남풍'을 몰고온 이가 제갈량이고 보면 주군에서 몇 수 조언하는 모사들과 차원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와 소설이 7:3으로 버무려진 게 삼국지라 하더라도 '정사 삼국지'를 지은 진수(陳壽) 또한 "정치 뿐아니라 전략과 외교 등 모든 면에서 탁월했음"을 기술했다는 건 당대의 기재였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처럼 역술가의 능력까지 보유한 제갈량이 훗날 주군이 되는 유비(劉備)의 삼고초려에 감동해 동참하며 "결국 대업은 힘들 것"이라는 독백과 라이벌 사마의(司馬懿)를 다 잡았다 놓치며 "일은 사람이 꾸미돼 이루지게 하는 건 하늘이구나"라는 탄성을 내뱉는 장면을 보노라면 "제갈량조차 운명까지 거스를 순 없었다"는 걸 헤아릴 수 있다.
제갈량은 애초에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긴 어렵다고 본 것이다. 허나 유비의 능력과 인품을 종합해 볼때 촉한의 황제가 될 그릇은 충분하니 남은 통일의 대업은 자신과 참모들의 노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의 유훈인 삼국통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것도 자신의 사망일을 예측한 뒤 만반의 대비를 해놓고 말이다. 당대 최고의 귀재라는 제갈량조차 운명의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휘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