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3-29 21:17
빵을 달라! 피비린내 나는 프랑스 혁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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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곽정부
조회 : 5,260 추천 : 2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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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파리근교 작은 농촌마을에 자식에게 먹일 빵이 떨어진 부녀자들이 주방을 뛰쳐나와 냄비를 두드리며 “빵을 달라!” 외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 여인이 고함을 질렸으나 곧이어 마을 모든 여인네들이 후라이팬과 냄비를 두드리며 동네를 돌다 흥분이 절정에 달해 왕이 있는 수도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가족을 위한 “빵을 달라!” 여인네의 외침은 마침내 하리케인이 됐다. 피 비린내 나는 프랑스 혁명은 이렇게 불붙었다. 혁명의 내란 속에 프랑스 국민 삼만 오천이 단두대 이슬로 살아졌고, 2번의 외국과 전쟁에 15만 죽었다. 왕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단두대에 목이 잘린 프랑스혁명은 3차까지 이어졌다.
통치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아 악단원이 합동으로 연주하는 수많은 악기의 개별 음을 정확히 듣고 지적할 수 있어야 지휘자가 돼는 것처럼 대통령은 나라 안의 크고 작은 소리를 구별해 듣는 열린 정치 감각을 필요로 한다.
만약 루이16세가 굶주린 시골마을 연인들의 민생고를 듣는 귀가 있어 빵 한 마차만 보냈다면 프랑스혁명은 뒤로, 다음시대로 미뤄지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루이16세는 민심의 향배를 철저히 무시했다. 혁명의 불꽃이 타올라도 루이왕은 취미생활인 열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술 더 떠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도 먹으면 될게 아니냐?” 는 망발로 민중들 마음속에 있는 활화산 도그마를 건드렸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정녀. 철부지왕녀였다. 프랑스 왕가에 시집왔으며 친정오스트리아는 잊어야 하건만, 폭정에 고달픈 민중은 악이 바쳐있는데도 비리세력과 내연정치를 끊지 못하고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다 혁명군에 붙잡혀 단두대 이슬로 살아졌다.
빵을 달라! 상처받은 민심의 향배를 알지 못하고 어디다 귀기우리는 건가? 비리과거 세력과는 단절이 빠를수록 좋다. 무능부패세력과 동반관계는 단두대로 달려가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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