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국회를 무시하고 기어이 26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살라미 전술을 사용하듯 3일에 걸쳐 야금야금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청와대의 이런 행태는 나라의 미래가 걸린 개헌을 가지고 국민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버라이어티 쇼를 하는 것과 같다. 어제 발표된 헌법 전문에는 부마항쟁, 6.10 항쟁, 광주 5.18 등을 새로 넣었고 국민발안제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소환제도의 신설과 검찰의 영창청구권 삭제를 비롯하여 근로자를 노동자로 표시하고 국민을 사람으로 표시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도 상당부분 좌편향으로 기울게 해 놓았다.
특히 아직도 시시비비가 진행 중이어서 사건의 진상이나 역사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의 완결이 되지 않은 현대사의 사건을 헌법 전문에 넣는다는 것은 사회적 갈등의 또 다른 원인제공이 된다는 점에서 결코 전 국민을 위한 헌법 전문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다음, 국회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소환제도는 새롭게 만들었지만 대통령 소환 항목은 제외시켰다, 국회의원 소환제도를 신설하겠다면 대통령의 소환제도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부합된다고 본다.
현직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해도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2/3의 동의를 받아야만 탄핵이 가능할 뿐,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국회 탄핵 의결과정에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하여 탄핵이 불발되어도 국민직접 소환제도가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에 대한 국민직접 소환제도가 없이 국회의원 소환제도만 있다면 대통령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여론을 호도하여 눈에 가시 같은 국회의원을 쳐낼 수가 있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만 더 키워주는 결과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소환제도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특정세력이나 시민단체가 특정 국회의원을 찍어 내는데 활용하기 딱 좋은 제도라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더구나 국가의 먼 미래를 지향하는 개헌이 국민적 합의 없이 대통령 마음대로 쉽게 할 사안도 아니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개헌은 모든 정파를 떠나 전 국민이 ‘이 정도면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발의가 되어야 한다. 개헌이란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절차적으로도 정당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헌이라는 화두가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18대 국회 때부터였다. 18대 국회였던 2008년 7월,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개헌을 추진하겠다면서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 논의를 계속해 왔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현재까지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개헌이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참모 몇몇이 모여 국민적 동의 없이 만들어진 개헌안을 일방적으로 발의한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이 원인이 되어 만들어진 헌법이다. 당시 정치권을 주름잡던 3김 씨를 비롯한 정치권과 재야시민단체 제세력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만들어진 헌법이다. 지금의 여당인 민주당과 집권세력도 현행 헌법 개정에 한 몫을 했고, 잘 만들어진 헌법이라고 상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던 세력들이 30년밖에 지나지 않은 헌법을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개헌이 안 된다고 호헌세력과 개헌세력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선거를 의식한 속보이는 치졸한 짓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재인은 얼마 전,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를 국민과 약속 실천, 대선과 지방선거 선거 주기 일치, 선거 비례성 강화, 국민투표 비용 절약 등을 들었다. 국민과의 약속은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언제 개헌을 하더라도 대선과 지방선거의 주기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부칙에 그 내용을 명기하면 될 일이라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다. 특히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에서 부결될 것이 빤한데도 대통령 발의라는 강수를 두는 것은 6.13 지방선거에서 “ 나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개헌하자는데 야당이 반대하여 불발되었으니 야당을 심판해 달라”고 하는. 책임 전가용 정치적 꼼수로 보인다. 청와대가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서두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