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기도
-홍경흠
십이월이면 온몸에서 소나무가 들어앉는 소리가 난다
거리 모퉁이 누가 버린 빈 가구 서랍 속 바닥에 깔린 창호지가 몸을 움직인다 사위어 가는 햇살에 눈을 비빈다
사방이 야위어 가고 유기견은 입을 다물고 소리 없이 지나간다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벌거벗은 숲들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다가 어디쯤에서 목을 꺾고
아직도 남아 있는 초록의 시간을 돌돌 말고 있다
어스름의 한쪽에서 불이 켜지고 다른 쪽에서는 캄캄이가 달려온다
별들은 비단옷을 입고 확연히 구분되는 빛으로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눈송이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 세상보다 더 환한 세상은 없다고 늘 조심하자 한다
햇살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할 때 털썩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좀,
십이월이면 온몸이 으깨져도 소나무처럼 푸른 꽃피우는 소리가 나고
언젠가 가야할 그곳은 행여나 이 세상 같기를 바란다
-시인수첩, 2018, 봄호, P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