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긍정을 심어주신 어머니
이재오는 어머니를 그의 영원한 멘토라고 말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틈날 때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그런 그가 한양 조씨 일가인 외조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형제들 중에서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어머니가 무척이나 풍부한 감성에 예술을 좋아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그는 믿고 있다.
어머니는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곁에 늘 책을 놓고 있었다.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신 분이지만 홀로 글을 터득해 읽고 쓰셨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당신이 읽으셨던 여러 소설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 내용을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는 이해심이 많아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당신의 말에 아버지가 상처받을까 봐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부덕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난감해했던 일 중 가장 큰 것은 집에 돈이 없는 것이었다. 농사만 짓는 집이었으니 겨우 먹고 살만큼의 곡식만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고무신도 사 신기기 위해 시장에 나가 채소를 팔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늦게 나오는데 시장 어귀에 어머니가 보자기에 오이 몇 개를 놓고 있는 모습에 와락 눈물이 났다고 그는 함박웃음에서 말하고 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창피하기도 했다. 장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를 무조건 집어차면서 어머니의 좌판에 앉아 엉엉 울었다. 가난, 배고픔, 서러움, 이 모든 것들이 밀물처럼 달려들었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 존경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 허탈, 이런 것들이 뒤범벅이 되어 그는 몇 개 안 남은 오이, 가지, 옥수수를 책보자기에 챙겨 싸서 일어섰다. 그리고 어머니 팔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다 팔아야 공납금을 가져갈 수 있다며 책보자기를 다시 풀어 팔다 남은 오이와 가지를 펴놓았다. 그때 어머니의 그 물기어린 눈빛을 그는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구에서 사시다 서울로 가끔 그의 집에 다니러 와서도 집 앞 시장에 가서 일거리를 받아 오곤 했다. 하루에 오백 원, 천 원 받으면서 종일 파를 다듬어 건네주기도 하고, 직접 파를 다듬어 시장에 가서 팔기도 했다. 그는 못내 안쓰럽기도 해서 그러지 마시라고 하면 어머니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해야 되고, 멀쩡한데 가만 앉아 있는 것도 결국은 죄가 된다”고 하셨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그 부지런함을 물려받은 것 같다.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한시도 멍하게 있어본 적이 없다. 일과를 정해서 생활했고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작은 감방 안에서도 운동을 빼놓지 않았다. 그의 손은 언제나 바빠서 쉴 틈이 없는 것을 보면 부지런하고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바쁜 손을 꼭 빼닮은 것 같다고 그는 함박웃음에서 말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