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잊으라. 어찌 우리 이 날을
1950년 6월 25일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나는 당시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 2학년.
이날도 책보자기 둘러매고 학교를 갔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둘째 시간이 되어도
선생님은 보이질 않았다
한참 후 선생님이 사변이 생긴 것 같으니
오늘은 지금 집으로 가란다.
다음 날도 학교에 갔다.
연락 할 때 까지 학교 오지 말란다.
어른들은 피난길을 서둘렀다.
할머니와 아이들만 집에 남았다.
우리도 가끔 이웃동네 친인척 집으로 피난을 갔다.
지금 보면 피난 간곳도 그리 멀지 않은 곳
비교적 더 산골 마을일 뿐.
전쟁이 나도 통신이 없으니
가끔 피난길에 함께 했던 분들이
전언 소식을 들을 뿐이다.
3일쯤 되니 대포 소리가 쿵쿠궁 들렸다.
난생처음 듣는 천둥소리 같았다.
비행기도 처음 보았고
폭격 잘하는 쌕쌕이도 보았다.
학교도 폭격으로 불타버리고
이웃 마을은 푹겨으로 쑥대 밭이 되었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렸다는 소식
젊은 이들은 군인으로 가고,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면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오늘이 71년전 6.25사변일
정전이 되고 산에 남을 베어 기둥세우고
가교사를 수수깡으로 흙벽을 치고,
가마니때기 깔고 앉아 가갸거겨
중학교 졸업때 까지 교실다운 교실은 없었다.
냇가에 가서 자갈 모우고 운동장 만들고
학교 생활은 비참했다.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