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오는 18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국회의원들을 들러리로 세워 김정은 앞에서 위신을 세우려고 했다가 개망신을 당했다. 청와대의 정상회담 초청을 국회가 일언지하에 발로 걷어 차버렸기 때문이다. 국회 초청장은 비서실장 임종석과 주사파 운동권 참모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3권 분립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3권 분립이 아니라 청와대 1권 독립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부야 당연히 대통령의 직할 속에 있어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인사에서도 드러나듯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도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검찰이 법원을 강도 높게 수사를 하는 배경에는 사법부를 길들이기 위한 정권의 사법부 장악 목적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입법부의 경우는 어떤가, 입법부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미 청와대의 거수기가 되었지만 그나마 입법부가 청와대에 장악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있기 때문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입법부도 여전히 반쪽 입법부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입법부를 장악해야만 집권 세력이 원하는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는 북한 퍼주기 정책도 마음껏 펼칠 수가 있고,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대량 생산을 해낼 터인데 절반 이상을 자치하고 있는 야당이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미운 털이 박혔겠는가, 이러니 국회를 좋게 볼 리가 없을 것이고 청와대가 국회를 장악해야할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법부의 수장은 국회의장이다. 국회의장은 중립적인 입장으로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하라는 취지에서 당적을 가질 수가 없다. 당적을 가질 수가 없으니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다선의원 출신이 의장직을 맡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성향은 숨길 수가 없어 가재가 게 편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겨냥하여 청와대의 나팔수가 되지 말라고 아픈 곳을 콕 찔렀다. 당사자와 민주당 측에서 심하게 반발했지만 당초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 문희상 자신이었으니 아무리 기분이 나빴더라도 자신이 엎지른 물이었다는 점에서 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임종석 비서실장이다. 과거 노무현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이 있었을 때는 문재인이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그때와 주종(主從)관계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상황은 그때와 꼭 닮았다. 임종석은 정당 대표와 국회의장단을 비롯하여 9명에게 평양정상회담 초청장을 보냈다. 올드 보이 정당 대표를 꽃 할매라면서 비웃기 까지 했으니 대단한 파워가 아닐 수가 없다. 문재인은 초청장 거부를 당리당략이라고 표현했다, 국회를 청와대의 하부기관 정도로 여기고 있기에 이런 발언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라면 행정부에서 관련된 장관들이 수행하면 그만일 뿐, 역할이 전혀 다른 국회의원이 굳이 동행할 만한 이유가 없다.
더구나 남북 정상이 회담을 하는 그 자리에는 국회의원이 끼어들 처지도 못되어 팔짱만 끼고 있다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모습은 추석 밥상머리의 안주 감으로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단 북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민주당, 평화당, 정의당, 등 별종 정당 대표들은 예외다. 청와대가 정당 대표와 국회의장단을 데리고 북한으로 가겠다는 속내는 김정은에게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가 거국적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목적 외에도 정상회담 후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국회비준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인 노림수 때문이었겠지만 냄새 잘 맡기로 유명한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특히 문희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거절이 청와대의 나팔수라는 야당의 비판을 상쇄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도 거절의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명색이 5선의 국회의장이라 자존심도 꽤나 상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청와대의 초청장 사건은 매우 잘못된 처신임이 분명했다. 먼저 남북 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정당 대표를 끼워 넣은 발상자체가 너무나도 아마추어적이었고 국회를 마치 청와대의 하부기관으로 여긴 오만과 독선이 유별났다는 점이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는 같은 국회의원이라도 경험 면에서 초선과 재선, 삼선은 급과 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초선 국회의원은 훈련소를 갓 나온 이등병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감히 초선 주제에,,”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을 알 리가 없는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은 청와대가 ‘하라면 할 일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국회를 경시하는 배경에는 문재인의 정치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문재인은 국회의원 초선의원 출신이지만 그마저도 중도에 사퇴하여 임기를 채우지 못 한데다가 차기 대선을 준비한다고 국회 경험을 거의 하지도 못했다. 이런 경력이 전부라면 국회의 작동 원리와 입법 기능, 그리고 국회의원의 역할에 대해 백면서생이라고 봐야 한다. 이처럼 국회의원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가며 다양하고 복잡한 의결 구조로 되어 있는 국회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어 권력의 힘으로 장악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부터 국회와 정치인을 경멸해 왔던 청와대 운동권 출신 보좌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의 국회 초청장은 관례와 절차를 무시하는 결례와 꼼수를 동반한 자충수에 다름 아니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