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는 휴식(休息)이 아닌 구상(構想)이었다. 朴대통령은 휴가가 끝나자마자 허태열 비서실장을 사실상 경질하고, 기타 몇몇 수석들도 교체하였다. 임기초 인사의 난맥상으로 이어진 지지율 하락과 윤창중의 글로벌 성추행 사건으로 망신을 당한 정권이,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무현의 NLL 발언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일신(一新 )하고자 하는 朴대통령의 의지가 읽히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신임 비서실장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일 것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하면 현대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자락을 잡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 YS의 대선 과정에서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발언으로 소위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켜 YS 당선에 일조한 공신이다.
● 김기춘 실장은 이후 철저한 親박근혜의 노선을 걸어왔다. 정수장학회 장학금 수혜자이기도 한 그는 장학금 수혜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박정희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지난 2007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현재도 박근혜 하면 항상 따라 붙는 속칭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 이력만 놓고 보면,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적격자가 없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부왕(父王)의 묘지기도 했고, 박근혜 자신의 잠저(潛邸) 시절 책사(策士)이기도 했던 것이다.
● 그러나, 김기춘 실장 임명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박근혜 정권은 출범한지 딱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정권 초기부터 이렇게 최측근을 비서실장으로 앉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도 역시 내사람이 최고라서일까?
대개 역대 대통령들의 인사를 보면, 집권 초기에는 사회에서 명망(名望)있는 인사가 비서실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권 말기에 가면, 그때서야 자기 사람을 데리고 임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김영삼 정권의 김용태,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노무현 정권의 문재인, 이명박 정권의 임태희가 그러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하금열이지만, 그는 사실상 두 달짜리 실장으로 정권인수를 맡은 실무자에 불과했다.
●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쩌면 자신과 가장 가깝고, 또한 자신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집권 초기에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아직 레임덕이 올 때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서둘러 자기사람만 데려다 쓰는 것에 대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하다.
물론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가장 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앉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김기춘이 그러한 역할의 적임자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우선 허태열 실장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가졌던 불만 중의 하나가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고, 성균관 일색의 인사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인사 문제에 있어서 김기춘 신임 실장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와 김용준 전 국무총리 지명자는 모두 김기춘 신임 실장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박근혜 정권 초기의 인사문제에 있어서 김기춘의 잘못된 조언과 추천이 한 몫을 했던 것이다. 법조계 출신을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이 이번에도 반영되기는 하였지만,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우리 법조계의 어두운 일면을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왔던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다.
● 특히 과거 법무부장관으로서 부산 초원복집에서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은 김기춘 실장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도청(盜聽)이라는 문제도 있으나, 분명히 지역감정을 나라의 각료가 대놓고 조장한 것은 결코 간단히 보아넘길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김기춘 장관의 임명은 또다시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즉, 정국을 안정시킬 카드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이 삼복더위에 꽉막힌 정국을 오히려 더욱 얼려버릴 공산이 크다.
게다가 김기춘 실장이 과연 대통령에게 직언(直言)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든다. 朴대통령은 현재 지나치게 자기 사람들에게 갇혀 있다. 그 특유의 정치감각도 모두 사라졌고, 대통령 혼자 청와대에 그냥 앉아서 가끔 각료들 불러 지시하고, 그 지시를 각료들이 열심히 받아쓰는 형국이다. 그러나 받아쓰기만 하지, 실제 그 지시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 정부가 유기적(有機的)이지 못하고 뭔가 어긋나있는 듯 하며, 정부와 국민이 따로 놀고, 정치와 민생이 실종된 그런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김기춘 실장이 朴대통령에게 적임자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지 묻고 싶다. 지금과 같이 여론이 분열되고 정치가 실종되고 민생이 파행을 맞은 시점이라면, 당연히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고,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心腹) 보다는 국민의 심복(心腹)을 데려다 써야 한다. 국민들은 현재 정치권의 쌈질에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고, 또 이를 그냥 지켜만 보면서 수수방관하는,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이를 즐기며 조장하는 정권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혹자는 여론조사가 60%라고 하지만,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인기가 떨어질 일만 남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내세웠던 각종 공약, 특히 복지공약은 상당히 후퇴하고 있고, 증세 안하겠다고 하던 공약도 이미 공염불(空念佛)이 되어가고 있다. 경기(景氣)는 점점 후퇴하고, 가계부채는 천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심각하며, 안정되었던 유가(油價) 마저 서서히 오르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측근을 데려다 방어(防禦)의 진용만 갖춘다면 박근혜 정권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보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하여, 모든 정쟁을 중단시키고 민생과 경제살리기, 고용증대 등을 위해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더펜관리자님에 의해 2013-08-05 21:31:59 토론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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