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펜
 
[칼럼]
 
 
작성일 : 13-07-22 11:57
2013년의 계사사화(癸巳史禍)
 글쓴이 : 아라치
조회 : 1,529  
● 연산군 4년인 1498년 <성종실록>이 편찬되었다. 당시 실록청(實錄廳)의 당상관인 이극돈은, 김일손(金馹孫)이 사초한 실록에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삽입되었음을 보고 이를 연산군에게 고변하였다. <조의제문>은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문장으로, 항우(項羽)가 자신이 세운 회왕(懷王)을 ‘명목상의 군주’라는 의미의 의제(義帝)로 강등시켰다가 다시 경포(黥布)를 시켜 죽이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오른 사건을 다룬 글이다.
 
연산군은 이 문장이 마치 연산군의 증조부인 세조(世祖)가 조카 단종(端宗)을 죽인 사건을 풍자하여 지은 작품이라고 여기고, 이를 사초에 삽입한 김일손의 의도를 의심하여 이른바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킨다. 김종직은 굴묘(掘墓)되어 부관참시를 당했고,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관리들과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사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한다. 
 
●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은 사실상 세조 때부터 권력의 핵심부에 진출한 소위 공신세력들이 훈구세력화한 상태에서, 성종 때 새로 중앙에 진출한 신진사대부들이 연산군의 비행(非行)과 무도(無道)를 폭로하고 규탄하면서 왕권의 전제화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무오사화의 핵심은 결국 왜 국왕이 사초를 열람하고 그 내용에 대해 시비(是非)하였는가이다. 사관(史官)의 집필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하면, 그 기록은 객관성을 잃게 된다. 본래 역사는 100%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춘추시대 진(晉)의 동호(董狐)도 역사에 과감한 포폄(褒貶)을 가하여, 자신의 주관을 넣었고, 공자 또한 <춘추>를 지을 때 이러한 집필태도를 계승하여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는 말이 생겼다. 
 
● 2013년, 현재 우리는 새로운 사화(史禍)를 겪고 있다. 2007년, 임기말 무리하게 추진했던 남북회담의 대화록 원본의 행방을 두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애초부터 무리하게 추진된 회담이었고,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노무현 당시 대통령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고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사초가 사라졌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존재했는데 중간에 훼손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존재하는데 국가기록원이라는 대한민국 실록청의 관리들이 열람을 방해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사초가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기록이 작성되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쏟아내었던 이해할 수 없는 여러 발언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기록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놓아야 한다고도 했고, 또 퇴임 이후 [E지원]이라는 기록원 시스템을 통째로 봉하마을 가져갔다가 다시 반납하는 황당한 일도 벌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기록이 고의로 누락되었거나, 아니면 실수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매우 당혹해 하면서도 이를 이명박 정권의 소행이라는 뒤집어 씌우는 상황이고,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산군처럼 그 기록을 직접 봤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명박 정권이 이 기록을 삭제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이 기록을 삭제해서 얻을 실익이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이명박 대통령도 노무현 정권의 일부 기록을 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몇몇 기록을 보니 정말 유치한 수준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기록도 보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오히려 자연스럽게 공개되는 것이 보수정권의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는데도 정말 이 유치한 수준의 기록을 이명박 대통령이 숨길 이유도 없다. 
 
이미 국정원에서 보관되었던 기록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의 수호(守護)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보인 정황이 드러났다. 이 기록은 당시 국정원장 김만복의 주도 하에 작성된 것인데도 이렇게 황당한 일을 벌여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원본 기록은 이보다 더 직설적으로 NLL에 수호에 대해 소극적인 수호 내지는 포기에 가까운 발언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 그렇다면, 이 문건을 공개되지 않도록 해서 가장 이익을 볼 집단이 누구인가? 바로 민주당이 아닌가! 한 국가의 역사기록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보다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조선시대도 그 기록을 거의 완벽하게 남겨 놓았는데, 첨단과학으로 관리되는 대한민국에서 역사기록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2013년 계사년의 이 사화(史禍)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 문제 하나가 국정(國政)과 정치(政治)의 모든 부문을 다 막아버렸다. 여야는 이제라도 이 소모적인 논쟁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다행히 찾았다고 하는 녹취록을 공개하여 노무현의 NLL 발언의 진위를 가리고, 국가기록원의 원본의 실종에 따른 책임자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를 신속히 단행하여, 이 지난(至難)한 사화(史禍)를 끝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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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13-07-22 13:28
답변  
이동훈님, 이제 사회를 종식해야 하는데, 아마도 끝없는 논란이 이어지리라 봅니다.
차라리 정치권은 손을 떼고 검찰로 넘기는게 더 낳을지 모르겠네요~

거기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