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펜
 
[칼럼]
 
 
작성일 : 13-04-12 10:50
전쟁에서 지휘관 자질은 국운을 결정한다.
 글쓴이 : 곽정부
조회 : 1,819  
적 도발 시 지휘부오판으로 회담제의는 적과 대치중인 장병들을 힘 빠지게 한다. 국토방위를 담당한 장병들이 사기저하(士氣低下)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BC31년 악티움해전서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연합군은 자기들 보다 작은 함대인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군에 대패했다.
 
그리스의 이오나아海서 벌어진 양군격돌서 안토니우스 병력이 형편없이 진 것은 치열한 전투 중에 연합군 공동사령관인 클레오파트라여왕이 자신이 타고 있던 초대형 함선 선장에게“이집트로 돌아가자” 명령해 열심히 적과 접전하던 우군안토니우스 군대를 뒤로 하고 전쟁터를 벗어나 도망친 단하나의 이유에서이다.
 
믿고 있던 우군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도망치자 사기저하 된 안토니우스 군대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고 로마의 옥타비아누스군대는 도망치는 적군 뒤에서 공격하기란 누워 떡먹기였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이집트국정은 환관내시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연히 여왕의 측근참모들도 내시. 환관으로 구성됐다. 환관의 생리상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복종할 뿐이지 국가미래 같은 대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태서 여왕 한사람의 본능적인 판단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이다.
 
악티움 해전서 패한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운명은 세계사에 기록된 대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고 프롤레 마이오왕조의 멸망과 이집트는 독립국가에서 로마황제 식읍으로 귀속됐다. 안토니우스장군의 운명도 자살로 마감했다.
 
같은 여성이나 더 나뿐 여건에서 운명을 개척하고 대영제국을 건설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치적을 살펴보자.
 
무엇이 이 두 사람의 격차를 만들었는지는 역사에 선명하게 나온다.
 
엘리자베스1세가 즉위당시 영국은 부도직전 재정파탄 상태에 있었다. 엘리자베스1여왕은 소통과 정보수집의 대가다. 무엇보다도 용인술(인재등용)있어 그의 출신이나 과거행적은 중시하지 않고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래만을 평가했다.
 
엘리자베스1세의 정부관료 임용은 너무도 유명해 치적이 한둘이 아니나 가장 압권은 해적두목 존 호킨스의 영국함대 사령관임용이다. 귀족들이 다 반대했으나 여왕 독단으로 임명된 해적두목 호킨스가 이끄는 영국함대는 1588년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함대를 열세한 위치서 격파했다.
 
전쟁은 병사의 수가 많고 적음에 승패가 달린 게 아니며 병기의 우수함이나 함대수가 많다고 꼭 이기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 당시도 증명됐다.
 
해적두목 영국함대 사령관 호킨스가 스페인과의 해전서 사용한 것은 화(火)다. 불로 적의 함대를 제압한 것이다. 오늘날의 환관내시들이 보면 간단할 것 같으나 입으로만 강골이 아니라 열세한 환경서 작전을 이끌려다보면 냉정한 사태분석과 치밀하고 과감한 때로는 목숨을 내놓는 결단력이 소용되는 것이다.
 
위 내용은 북한 도발사태의 추이를 무늬(겉)만 보고 오판해 경거망동하는 지휘부서 참고로 해야 하는 사항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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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13-04-14 14:06
답변  
지도자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좋은 말씀 입니다. ^^
곽정부님, 한번 뵙기를 원합니다.
더펜관리자 13-05-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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