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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성일 : 15-08-03 11:13
지도자의 德目,박정희에게서 배워야
 글쓴이 : 문암
조회 : 1,318  
<어리석은 자도자는 여론에 겁을 먹고, 용감한 지도자는 여론을 무시하며, 현명한 지도자는 여론을 이끌어간다> 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박정희/박근혜 두 父女 대통령에 대입해서 비교하면서 가끔 人間無常을 절감하곤 한다.

20대 초반의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4.19 의거 덕분에 어부지리로 집권했던 장면 정권의 新/舊파의 추잡한 정쟁싸움에 진저리를 치던 나로서는 젊은 군인들의 5.16 군사 쿠테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합법정부를 총칼로 무너트린 행위는 위헌적 반역임이 분명하지만 무능하고 썩어빠진 정권 때문에 종북좌익들의 발호가 국가존망의 위험수위에 까지 이르렀음을 간과 할 수 없다며 거사를 도모한 쿠테타군의 주도자 박정희에게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인기영합과는 거리가 먼 목숨을 건 도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뇌리에는 '지금은 비록 정권 찬탈의 반역행위로 지탄을 받을지라도 먼 훗날 역사는 나의편이 되리라' 라는 확신하에 쿠테타를 혁명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있는 박정희의 한일협정은 지도자로서의 인기에 연연했다면 도저히 단행 할 수 앖었던 굴욕외교 저자세외교 였지만 그는 과감하게 밀어부쳤다.
戰後 피폐해진 일본으로부터 부당했던 식민통치에 합당한 배상을 받아낼 수 없다고 본 박정희는 밚은 국민들의 반대와 훗날 받아야 할 굴욕외교/무모한 졸속외교 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쥐꼬리만한 배상금에 만족해야했던 정부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조국 근대화 경제건설에 필요한 종자돈 이었다.
결국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던 굴욕적 저자세의 대일청구권을 관철시킨 신통치 못했던 배상금액이 세계인의 눈들을 놀라게 했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종자돈이 되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무능한 지도자가 여론을 무시하면 만용이되어 국익을 크게 그르치겠지만 현명한 지도자가 여론에 겁먹지않으면 국익에 크게 이바지 한다는 실증이기도했다.

월남전 파병의 결단 역시 '젊은이들의 피를 팔아먹는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강행 했던 것은 결국 월남 특수를 통해서 우리 경제의 해외진출의 원동력이 되었고 한/미관계의 결속과 경제적인 지원의 확대효과도 얻어냈으며, 우리 군의 전투력 실전경험을 통한 대북 경계의 초석도 되어 一石四鳥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인기에 연연했다면 도저히 결행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집권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와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한 폭거로 비난하지만, 이 기간중의 우리 경제는 10%가 넘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특히 자유월남의 패망에 고무된 북괴의 대남도발에 쐐기를 박는 모티브가 되었으니 혹독했던 유신체제가 시대적인 必要惡 이었다는 자위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술집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한 일이 있었던 나로서도 당시의 유신체제는 조국근대화를 향한 진통기로서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의 풍요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낸 시대적 필요악 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인간 박정희를 가리켜 혹자는 日帝와 좌익에 동조했던 반역자, 정권욕에 사로잡힌 독재자 또는 인기와는 거리가 먼 애국의 화신, 5천년의 가난을 물리친 조국근대화의 영웅 등등으로 의견이 백출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박정희 시대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의 원시국가 만도 못했던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부상되었고 박정희의 억압정치(한국적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억압적 통치에서)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日帝에 부역했고 좌익에 가담했던 것은 玉의 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前非가 있었기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애국에 매진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는 죄를 짓고 암울한 세월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인바 꼭 그를 지탄할 일 만은 아니라고 본다.
죄를 짓고 뻔번스럽게도 오리발을 내미는 요즈음의 후인무치(厚顔無恥)한 정치인들을 보느라면 前非의 죄값을 치루기위해 분골쇄신했던 박정희는 그들의 反面敎師 임이 분명하다.


인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박정희 대통령에 비해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선친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때로는 어리둥절하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며 북괴의 도끼만행 사건에 일갈했던 박정희에 비해 그때의 김일성 보다도 더 악랄한 악마적 김정은 정권을 향한 애절한 짝사랑이나 다름없는 대북 화해 구걸정책을 펴고있는 박근혜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주적의 도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안보 제일주의자였던 박정희에 비해서 주적은 핵무장을 포함해서 막강한 군사력으로 오직 적화통일에만 혈안이 돼 있는데도 마치 확실한 국방과 안보는 주적과의 화해에 있다는듯 국방비는 복지비용에도 크게 못미치게 책정하면서 대북 화해정책과 지원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준비를 충실히하라' 라는 말을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선친의 안보관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게 했는가?

박근혜정부의 친중반일 정책만해도 그렇다.
이는 좌파들과 일부 국수주의자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인기가 있겠지만 국익과 국가안보 면에서는 거의 망국적 수준이다. ​
중국은 우리의 주적 북괴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준 적국이자 6.25 전란때는 남침에 가담하여 수 많은 살상과 우리의 통일을 훼방놓고서도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는 준 적국이며 우리의 우방인 미국의 준 적국이기도하다.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냉담한 것은 괘씸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러한 이유만으로 보란듯이 친중반일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愚策에 다름아니다.
일본이 36년간의 강점 식민통치와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수많은 약탈행위를 사죄한다고해서 그들의 양심이 바뀌지 않는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의 속성인자가 바뀌지 않는한 그들의 힘이 우리의 힘을 압도하는한 언젠가는 과거와 같은 만행은 재연될 수도 있다.
그점 장구한 한일 역사가 반증한다.
따라서 아무런 실익도 없이 손해만 당할 우직한 반일정책 보다는 우리보다 한수 위이고 힘이 더 막강한 그들에게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서 먼 훗날을 대비하는 표나지 않는 극일(克日)정책이야말로 국가지도자의 몫이다.
마치 박정희가 수 많은 굴욕과 괄시를 참아가며 일본의 新日鐵을 벤치마킹하여 훗날 일본의 모든 철강회사들을 압도했듯이....

무릇 지도자가 파퓰리즘에 경도되어 인기에 연연한다면 그 피해자는 국가와 국민이다.
얼마전 메르스가 한창 창궐할때 대통령은 돌연 미국 방문을 취소/연기하여 손님 맞이를 끝내놓고있는 미국에게 실망을 안겨 준 일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국민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씨에 감동이 될듯도하나 과연 그럴까?
대통령이 메르스 전문가여서 그가 꼭 필요하다면 모를까 국제간 그것도 가장 중요한 우방의 국가원수와의 회동을 국내 여론을 의식해서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이는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국무총리는 그저 폼으로만 놔두었는가?
대중을 향한 인기의 노예가 아니고서는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지도자에게 대중적 인기는 한때를 즐겁게 해 주지만 자신과 국민들 그리고 국가에 대한 독약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중의 인기가 그토록 절실하다면 대통령이될게 아니라 연예인이 될 일이다.
경부고속도로 공사의 강행에 반대했던 야당을 향해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 라고 일갈했던 박정희의 외롭고 처연했던 불굴의 지도자 모습이 새삼스럽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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