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손자)는 "전쟁의 기본은 적을 속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흔히 전쟁하면 엄청난 화력을 갖춘 국가의 정면대결만 떠올리지만 실은 속임수가 먼저고 핵심이다. 잘 훈련된 군사와 무기,군량미를 바탕으로 적을 교란할 수 있는 전략은 예나지금이나 전쟁의 필수요소다. 글제인 가도멸괵(假道㓕㶁)이 이를 증명한다.
춘추전국시대 오패왕 중 첫번째 패권을 차지한 제환공이 주름 잡던 시절 진(晉)나라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이유는 중원 진출을 괵(㶁)과 우(虞)나라가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진헌공은 명참모 순식의 조언대로 순망치한과 같은 관계인 괵과 우의 이간질에 돌입한다.
먼저 괵나라에 진귀한 보물로 접근한 뒤 지체 없이 우나라에 귀한 옥(玉)과 말을 보내며 "자신들의 철천지 원수인 괵나라를 치러 갈 길만 빌려달라"고 애원한다. 받아 먹은 게 있는 우공(虞公)은 신하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길을 내어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진나라는 괵나라를 손쉽게 점령하고 환영 나온 우나라마저 집어 삼킨다. 천하의 바보 우공이 땅을 쳤으면 두말할 나위가 없고 말이다.
시대가 흘러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가도멸괵을 흉내낸다. 조선에게 "명(明)나라를 치러 갈테니 길만 빌려달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속내를 알아차린 조선은 "가당치 않다"며 불허하지만 토요토미가 조선의 사신 앞에서 보인 얼치기 행동에 안심해 대비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영악한 토요토미는 사신들 앞에서 젖먹이 아들을 얼르고 달래는 기행을 보여 방심케 했다. 토요토미가 전쟁의 기본인 '속임수'를 충실히 따른 결과 조선은 방비에 소홀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만약 조선이 토요토미의 속셈을 간파했다면 임란의 폐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백여 년 간의 내전을 경험한 일본에게 조선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성웅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의 참전이 없었다면 조선은 멸망했을지 모를 일이다. 적에게 속지 않으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적을 알아야 함은 오늘날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현재의 한일 관계는 참으로 불안하다. 일본은 우릴 아는데 우린 그들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휘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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