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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15 06:51
(上) 울릉도 이까바리.
 글쓴이 : 남해어부
조회 : 2,332   추천 : 1   비추천 : 0  
untitled.png() 울릉도 이까바리.
 
오래청동시절, 백수가 되어 과 바다. 낮선 도시를 떠돌며 고독하게 방랑할 때가 있었다. 믿고 있는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푸른 파도 일렁이는 갈매기 나르는 동해바다가 미친 듯 보고 싶어 옷가지 여벌을 가방에 챙겨 넣고 강원도 속초로 초행길을 떠났다.
 
동해안을 여행하며 설악도 구경하고 당분간 보내기로 했다. 속초터미널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아저씨에게 "방 값싸고 조용한 동네 어디 없느냐?"했더니 잠시 후 남쪽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한적한 동네에 내려줬다. 속초시 교동 언덕배기 위의 동네로 거기서 수소문해 건너 방 하나를 얻었다.
 
집 주인은 마흔 중반나이에 협객기질이 따분한 삐^적 마르고 키 큰 남자였다. 뚜렷한 직업은 없이 오징어 철이면 이까바리 배를 타는 어부가 됐다, 산삼 캐는 계절이면 산 속을 해매는 심마니로 변했다. 산삼을 못 캐면 산 더덕이나 산나물을 캐와 사는 사람이었다.
 
강원도 인제가 그의 고향이었다. DJ가 거기서 국회의원 출마했을 때 그를 지지하여 상대후보 선거 운동원에 주먹을 날려 폭행죄로 잠시 큰집에도 다녀온 전력이 있다고 어느 날 그는 조용히 고백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아는 것도 많았다. 그의 지난 경험담을 들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타향서 의지할 데도 없고 해, 호형호재 하기로 하고 강원도 특산물 경월소주를 됫병으로 까서 오징어 젓갈을 안주삼아 술잔을 비우곤 했다. 그 때 술안주 삼은 오징어젓은 일반수산 시장서 파는 젓갈 맛관 사뭇 달랐다.
 
먼 바다 위 오징어잡이 배서 어부들이 낚은 오징어 중에 크기가 작아 상품가치 없는 것은 골라, 바닷물에 행 그고 소금 쳐 비닐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와 독 속에 넣어 서늘한 곳에 숙성시켰다. 그렇게 보름정도 발효시킨 걸 소금기를 깨끗이 씻고 가늘게 썰어 갖은 양념으로 무쳐놓으면 그 맛이 천하 일미였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평일엔 설악산 흔들바위에 올라 풍광에 취하고 여행자들과 어울렸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면 전신주에 걸려있는 희미한 전등불이 비추는 내 그림자를 보면 속초 부두를 거닐었다.“나의 미래는 어떤 걸까?" 을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동해안의 이 까 철이 됐다. 이맘때면 속초는 시가전체가 오징어 냄새로 가득 찼다. 바닷가, 부두. 수협. 어촌 앞마당도 오징어 건조 냄새로 가득하다. 오징어시즌의 연례행사였다 .
 
당시 속초 인구는 11이었다. 매년 외지로 나가는 사람이 늘어 인구는 줄어들고 있었다. 매년 이맘때쯤 벌어지는 이 까바리는 동해안 어민들의 중요수입원이다.
 
집주인이 이 까바리를 가자고 권했다. 속초 중앙시장 안 수산물 낚시점에서 집주인 보증에 낚시도구 한 벌을 외상으로 마련했다. 낚시 도구를 사가지고 오는 길에 부둣가에 一列횡대로 정박한 이 까바리 배중에 정원50명 정도 타는 어선에 올라 선장을 만나 승선허가를 받았다.
 
난생 처음 이 까 배를 타게 됐다. 오징어 배의 어부는 자기 잡은 어획량의 50:50으로 선주와 나눠, 배 삯과 인건비를 상계하던 시절이었다. 이 까 배의 선장도 자기 잡은 어획량 100%을 인건비로 받는 노동 대가론 단순계산 방식이었다.
 
당시는 먼 바다서 오징어 낚는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어도 보상은 없었다. 장례식장에 선주가 보내는 막걸리 몇 통으로 의무를 다하던 시절이다.
 
다음날 새벽 쌀과 부식. 식기. 낚시도구를 챙겨 집주인과 함께 승선허가 받은 배에 올랐다. 배위에는 사람들이 벌써들 와 벅적이며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 까바리 배의 정원이 모두차자 새벽동이 미처 트지 않았는데도 배는 출항했다. 우리가 탄 이 까 배는 70T급 목재어선이었다. “통 통거리는 발동기 소리와 함께 안개 자욱한 속초 항구를 빠져 나가며 이 까 배는 연 신 경적을 울려댔다.
 
속초 항구에 가득 찬 안개를 헤치며 우리 이 까 배는 먼 바다를 향해 나갔다. 오전뿌연 안개가 덥혀 흐린 날씨였다. 해는 떴어도 사물이 희끄무레했다.
 
우리가 탄 이 까 배는 앞으로 나가고 육지가 뒤로 점점 밀려났다. 육지가 희미해져 가물가물하자 가슴 밑바닥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강처럼 흘렸다. 아득한 태고로 먼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드는 처녀항해였다
 
육지 산이 희미한 선으로 이어지다 나중엔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깊은 바다를 향해 이 까 배는 나아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푸른 바다로 들어서자 풍랑은 거세졌다 . 70t 목선은 요동치고 뱃속이 울렁거려 어지럼증과 뱃멀미가 밀려왔다. 내 뱃멀미의 고통과는 아량 곳 없이 이 까 배는 미지의 바다로 요동치며 나갔다
 
속초항 출항한지 7~8시간 정도 지나자 어부들은 배 갑판 위로 나와 낚시도구을 손질했다. 집주인 도움으로 낚시 바늘을 연결하는 작업을 끝냈다. 오징어 낚는 준비를 간신히 마쳤다.
 
두어 시간 더 지나니 울릉도 근해로 진입했다. 거기서 또다시 동해 검푸른 파도를 해치며 계속 북행했다. 먼발치 독도가 보였다 사라지며. 우리의 이 까바리 배는 북으로, 북으로 나갔다.
 
목적지인 공해상에 도착한 때는 바다가 온통 깜깜했다. 어둠속에 선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앞 갑판서 부르릉! 요란한 소리가 나며 발전기가 돌아, 집어등 불이 켜졌다. 밤바다가 대낮처럼 환하게 배 주위를 밝혔다.
 
이 까바리 배의 앞 갑판 위는 선원들 키 높이에 전기 줄에 매달린 수십 개의 호박만한 전등이 공해상 밤바다를 밝혔다. 등 하나의 밝기가 2000촉이란다. 바다 먼 곳에 보이는 다른 어선들도 하나 둘씩. 집어 등이 켜졌다. 동해의 밤바다 위는 마치 용이 바닷물을 가르며 꿈틀거리는 것 같은 불야성 장관이 연출됐다.
 
선장이 오징어가 잡힐 곳이라 예상되는 곳에 도착하자, 엔진을 끄고 배를 정지시켰다. 3M~5M 높이 파도치는 대로 배는 출렁거리며 둥실거리며 떠내려갔다. 선장과 어부들 중에 경험 많은 이들이 협동하여 마치 낙하산 같은 해먹이란 물 풍선을 바다로 내 던졌다. 물 풍선 닻에 바닷물이 걸려 브레이크역할을 했다.
 
배가 파도에 쓸려가지 앉고 정지하자 어부들은 재빨리 준비했던 오징어낚시를 뱃전서 내렸다.
 
이 까 낚시는 일반낚시와는 모양세가 다르다. 연 둘레 비슷한 간단한 종류가 있는 반면에, 세숫대야 두개를 반대로 붙인 굴렁쇠 모양에 낚싯줄 감은 종류가 있다. 경험 많은 어부 낚시는 장방형 실타래 같은 모양에 낚시 바늘이 여러 개 달린 걸 사용했다.
 
뱃전에 고정시킨 오징어 낚시의 굴렁쇠 손잡이로 낚시 줄을 반대로 돌려 줄을 풀면 추 무게에 낚시 바늘은 바다 밑 일정거리에 도달했다. 파도치는 대로 배는 출렁거렸다.
 
바다 속에서 먹이 활동을 하던 오징어는 집어등 불빛에 현혹돼 불빛을 향해 달려와선 스스로 낚시에 걸렸다. 파도 위의 릴 움직임과 낚시 줄에 손맛을 느끼며 굴렁쇠 손잡이를 돌려 낚시 줄을 감아올리면 어떤 때는 한번에 7~8마리씩 궤 올라왔다.
 
낚시에 걸린 오징어가 물 밖에 나오는 순간, 자길 낚은 어부를 향해 먹물을 쏘아댔다. 저항의 먹물공격을 자신을 낚은 어부에게 했다. 먹물은 정확하게 어부의 얼굴을 강타했다.
 
동해의 밤바다 위엔 날이 새도록 굴렁쇠 손잡이를 돌리는 어부의 숨결로 가득했다. 어부들의 낚시 줄 감았다 풀며 또 감는 행동이 끝없이 반복됐다. 운 좋으면 하루 밤 1.500~2.000마리를 잡기도 하나 보통 7~800마리 정도 수확물을 챙겼다.
 
어떤 어부가 한 창 때 하루 밤에 4.500마리 잡아 신기록을 세웠다고 하나 듣는 이들은 ""으로 인정하는지 다들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밤바다의 이 까바리 배 위 자정이 오면 어부들은 모두 작업 손을 놓고 앞 갑판 위에 모여든다. 오징어로 회를 치고 초고추장을 만들고 숨겨가져 온 경월소주 됫병이 등장한다.
 
군대 찬합 뚜껑 정도 소주가 한사람씩 돌려졌다. 곁들여 찬밥을 오징어 횟물에 말아먹는데 그 때 그 곳서 그 맛은 죽었다 깨도 잊을 수 없었다. 야식이 끝나고 한숨 쉰 뒤, 새벽녘 동틀 때까지 이 까바리는 계속됐다. 옆 사람과 말 건널 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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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15-09-15 10:04
답변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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