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이나 지방선거에 복지정책중 무상 급식은 野圈의 공약이고 선별적 복지(잘사는 사람은 돈내고, 못사는 사람은 무상 급식)는 與圈의 공약집이다.
각 국가들 특성이 상류층이나 중류층보단 친서민들로 구성된 국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선에서 표심얻기에 가장 핵심공략이던 무상복지를 공략했던 야권인사들이 대거 당선되었던 것이다.
수만원씩 들어가던 급식비를 땡전 한푼 안받고 공짜로 준다는데, 수억 가진 재벌인들 마다하겠는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먹는다고, 가진자들이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구인 것이다. 물론 가진자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오세훈 전 시장은 우리나라 형편상 무상복지는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선별적 복지에 서울시장직을 걸었고,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은 무상복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었다. 오세훈 시장은 "과잉복지는 반드시 증세를 가져오거나, 미래세대에 무거운 빚을 지운다"며 사퇴했고,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이 전면 무상복지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광역단체나 지자체에서 말은 안해도 곪았던 상처들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정부에서 내려주는 복지에 대한 예산들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고를 비워가며 예산을 책정하기엔 국가위기라는 무리수가 따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주장했던 선별적 복지는 국가발전상에 비례하여 무한적 발전가능성이 있지만, 야권에 무상복지 정책은 한시적으로 정책적인 도구로 인용되어 임시방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광역단체를 비롯하여 지자체들, 자신들은 더 이상 무상급식 못한다고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필자 역시 국민의 일원으로 하나라도 혜택이 주어지면 마다할리 없겠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나만 살자고 모른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들은 기하급수(幾何級數)식으로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 일 각 국민들이 선별적 복지를 선호하는 이유는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은 불황이던 호황이던 살아남을 수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먹는 서민들은 아프거나 병들어 끼니 때울게 없으면 동사무소나 구청 사회복지과에 신청하면 타당성이 있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진자들이나, 없는자들이나 모두 복지혜택을 달라고 신청한다면, 반드시 지원받아야 생활을 연명할 수 있는 절실한 사람들은 정작 혜택받는데 제외될 수 있을 것이고, 100원의 혜택이 10원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수시장 경기가 불황인 탓에 잘사는 사람은 잘살고, 못하는 사람은 늘 못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여 고질적으로 묵여있던 규제완화를 풀긴 했지만 친서민들 피부까지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 각성해야 할 정치인들 한 둘이 아니다. 자신의 영달을 채우기보단 국민들 대변인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소신있는 정치인들이 몇이나 되는가,라는 것이다. 온국민들이 추구하는 행복하게 잘살기 위해선 일반국민들보단 대변인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선견(先見)과 지략(智略)이 있어야 한다.
무상급식, 잘살고 못사는 것을 떠나, 주다가 안주면 근성있는 일각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혼선이야기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력을 발휘해 국민들을 설득하라, 전면 무상복지는 우리나라 실정에 조금 미약하고,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에 현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