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펜
 
[칼럼]
 
 
작성일 : 15-11-24 07:05
YS의 말, "칠푼이"는 과연 누구인가?
 글쓴이 : 주노
조회 : 1,779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 많이 회자되는 말은 "大道無門"이다. 뜻이야 국민들 모두가 아는 말이고, 여러 가지 말 중에 또 한가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로 이것은 유신정권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힌 시점을 이끌어낸 말이다. 1979년 8월 YH 여공들이 당시 김영삼이 총재로 있던 신민당사로 쫓겨오다시피 몰려왔고, 김영삼 총재는 이들을 당사로 맞아들였다. 바로 이때 남긴 말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이다.
결국 닭의 모가지를 비틀던 유신정권은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러지면서 마감하게 된다. 결국 새벽이 오고야 말았다. 김영삼 총재의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정치적 암흑기를 비추는 한줄기 빛이 되어 비추고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후 서울의 봄을 잠깐 맛보는 듯하다가 전두환의 권력욕에 군사 독재의 소용돌이는 다시 몰아치지만 그것은 18년 군사독재의 후유증을 앓는 정도의 것이었다. 국민의 힘은 6.29를 이끌고 다시 비트는 목을 가누고 새벽을 맞이했다.
우리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도 이제 육신이 남아 대한민국에서 할 일은 없었는지, 하늘의 넓은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분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에 우리의 정치는 흘러온 것이다.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기록(26세)도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 우리들의 귀에 남는 짧은 어록이 있다.
"칠푼이" 이 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남긴 말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의미로 이 말을 던졌는지 모르나 아마도 현철이 공천 문제로 기분이 많이 상하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가 담긴 말이라 본다. 물론 그 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고, 그 여파에 힘입어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칠푼이"의 뜻은 덜떨어진 사람, 혹은 많이 부족한 사람, 7삭동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찌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결국 인간은 온전하지 못한 존재이니 7삭이던 8삭이던 큰 차이가 있겠는지 모르겠다. 아니, 정신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없으니,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도 완전수인 10삭에는 못 미치는 불완전한 군상들이 살아가는 지구촌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7푼이 박근혜는 대통령에 올랐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
한가지 분명한 것은 7푼이를 지금도 완전수인 10푼 이로 알고 죽기 살기로 엄호하는 자들이 꽤나 많은데 그들은 최대한 7푼이 밑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6푼이도 있고 5푼이도 있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기는 잘 보얐다. 7푼이처럼 살아가는 정치인들이 너무나 많으니 하는 말이다. 사실 나도, 7푼이도 못 되는 정도라고 자평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어쨌거나 다음부터는 그래도 칠푼이는 넘는 사람을 대통령에 뽑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정치판에는 칠푼이 들 끼리 도토리 키재기하는 모습을 날이면 날마다 보며 살아간다. 그것을 보며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불안해하기도 하며 때론 분해하기도 하지 않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국민들의 가슴속에 그에 대하여 빛 진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국민들이 많다. 김영삼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어땠을까?/ 아마도 민주화의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뒤처진 모습이었으리라. 과거를 돌아보니 과연 김영삼의 결기가 없었다면 10.26도 없었을 수 있고, 6.29도 없었을지 모른다.
10.26의 계기가 된 부마사태는, 'YH 사태'가 계기였던 김영삼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 처분을 내린 것이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신정권의 붕괴는 그 중심 축에 김영삼이 있었던 것이다.
6.29 민주 항쟁의 불씨는 무엇이었는가?
바로 김영삼에 대한 초산 테러와  자택 연금 등에 의한 23일간의 단식투쟁이 전두환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는가? 정치인 김영삼은 우리나라 정치판의 중심에 늘 있어 왔고, 그로 인하여 한 발짝씩 민주주의를 되찾는 일이 진행되어 왔다.
과거의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일도 김영삼의 개혁적 의지가 담긴 정치사의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었다고 평가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칠푼이'들은 어찌 보면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자유민주주의의 빚진 자들이 아닌가?
더펜 thepen님의 사진.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11-24 20:28:20 토론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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