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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작성일 : 15-01-11 06:00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땅 (최응표 한국사 바로 알리기 미주본부 대표)
 글쓴이 :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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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땅
북한을 바로 알면 대한민국이 보인다
소련의 흉계 (1), 북한 위성국 만들기
최 응 표(한국사 바로 알리기 미주본부 대표)
잘못 알려진 38선의 진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선생이 소설 ‘山河(산하)의 서문에 남긴 우리시대의 잠언이다.
작가는 역사의 진실이 음모와 공작의 무덤에 묻히면 惡舌(악설)이 되어 세상을 뒤엎고, 세상 밖에 들어내 햇볕을 쪼이면 미래를 밝히는 산 역사가 된다는 깊은 뜻을 전하기 위해 ‘산하’를 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까지 음모와 공작의 무덤 속에 숨어 우리에게 悖惡(패악)질만 해온 소련의 ‘북한 공산 위성국’ 만들기와 ‘가짜 김일성’만들기 흉계를 무덤 밖으로 끌어내 ‘정통성시비’에 매듭을 지으면서 ‘역사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해방정국과 건국시대를 거쳐 자유와 번영의 시대를 살면서 좌우이념에 짓눌려 읽으러지는 역사의 모습을 지켜본 世代가 풀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結者解之(결자해지)라고하면 이해가 될까.
소련은 1945년 8월 9일, 對日戰(대일전)에 참가하기 이전부터 중국과 조선(韓半島)에 대한 共産植民地(공산식민지) 야욕을 가지고 있었고, 소련의 기본 전략은 모든 점령지역에 공산정권을 세워 그 정권을 철저하게 괴뢰 化(화)하는 것이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소련의 야망은 2차 대전 승전국의 일원이 되면서 본격화되었고, 東歐圈(동구권)을 위성국으로 만든 소련은 그 여세를 몰아 한반도 공산위성국 만들기 공작에 착수했다.
1945년 8월 9일을 기해 만주를 거쳐 북한에 진격한 소련군은 웅기, 나진을 점령하고 12일에는 청진을 지나 24일 평양에 입성하며 한반도 전체 점령을 목표로 南進(남진)의 속도를 더해 갔다.
예상외로 빠른 소련의 진격에 놀란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 전체 장악을 막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남쪽으로의 진격을 38도선에서 멈추라는 메시지(지시)를 소련에 보냈고, 소련이 미국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드리면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지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힘’의 논리다. 소련이 獨蘇(독소)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일전 참전으로 2차 대전의 승전국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의 힘에 도전할 만한 위치는 못되었다.
독소전쟁에서도 미국의 원조에 의지했던 소련은 그처럼 악착같이 버티던 일본을 원자탄 두 방으로 무너뜨리는 엄청난 미국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소련은 일본까지 미국과 공동 점령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었지만, 홋가이도(北海道)로 미군을 이동까지 시키며 맥아더 장군이 강경대응하자 일본공동점령 야욕마저 포기해야 했다.
만약 소련이 미국에 대적할만한 힘이 있었다면 일본 분할점령 야욕과 한반도 전체 위성국 만들기 전략을 그렇게 쉽게 포기 했을까. 소련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면 戰後의 세계사는 흉측하게 뒤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련의 야욕이 현실화 되어 한반도에서처럼 일본의 절반을 공산독재체제가 지배하게 되었다면, 북한의 공산독재와 일본의 공산독재의 중간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된 남한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적 사실에 순응하는 교양국민의 자세가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에 있어서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협상’, ‘협력’으로 세월만 보낸 결과 북한의 힘만 키워준 참담한 경험을 가진 우리는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질서유지는 협상이나 인도주의가 아니라 ‘힘’이 우선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얻게 된다.
이렇게 힘의 논리에 굴복한 소련은 일본 분할점령과 한반도 전체 공산화 전략을 포기하고 북한의 완전한 소련위성국(공산 식민지) 만들기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런 소련의 검은 속셈은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한지 불과 한 달 뒤인 1945년 9월 20일 “북한 점령지역에 단독 공산정권(민주기지)을 수립하라”는 스탈린의 지시에서 확인된다.
만약 미국이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38선을 긋지 않고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분에 넘치는 자유와 풍요를 누리면서도 복에 겨워 칭얼대는 대한민국 국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종북적 주장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국민이 배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엄격히 말해서 한반도 분단은 소련이 대일전에 참여하면서부터 싹이 텄고,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위성국화 하려는 스탈린의 야욕(더러운 욕심)이 그 원흉이다. 이것이 38선의 진실이다.
한 편, 태평양전쟁에 패한 후에도 계속 한반도를 지배하려던 일본의 야망과 미국과의 강화중재를 소련에 의지하려 했던 일본의 판단 미스, 그 때문에 일본의 항복이 늦어져 소련의 참전을 불러온 것이 근본 원이라는 취지의 하와이대 최영호 교수의 새로운 주장은 소련의 책임론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38선의 진실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연구결과다.
어쨌거나 분단의 원인이 소련의 북한 공산화 전략에 있다는 사실이 ‘북한 점령지역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라’는 1945년 9월 20일의 스탈린의 지령에서 분명히 들어난 만큼, 종북 이념으로 비틀어진 역사교육을 바로 잡아 ‘국가정통성’ 시비와 ‘역사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리고 만주주둔군 일본 관동군의 작전지역 재편도 한반도 분단을 가져온 씨앗의 하나다. 이 대목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자.
소련의 북한 위성국 만들기
앞에서 말한 대로 스탈린의 북한 위성국 만들기 공작은 소련 붕괴 이후 밝혀진 여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먼저 김국후 교수의 저서 ‘평양의 소련군정’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급한 일은 북조선에 소련의 위성 정권을 창출한다는 큰 틀의 전략을 세우고, 장차 이 정권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아울러 소련의 위성 정권과 지도자 양성의 토양이 될 정당과 사회단체를 조직하는 과제도 시급했다.” (페이지 100)
여기서 우리는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철두철미하게 꾸며진 소련의 공작에 의해 만들어진 괴뢰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서 다음 페이지를 보자.
이들 과제는 소련군 극동전선 총사령부와 평양의 소련군정의 구상이 아니라 스탈린의 지령이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스탈린 대원수는 1945년 9월 21일(다른 기록에는 9월 20일), ‘북조선에서 민주정당과 사회단체들의 광범한 블록에 기반을 둔 부르주아 만주정권(공산정권)을 창설하라’고 지령했다.”
저자인 김국후 교수는 이 지령은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를 재해석해야 할 정도로 의미 있는 내용이라며 점령 초기부터 북한만이라도 단독 정권을 세워 한반도의 ‘민주기지(소련이 말하는 민주기지는 공산정권)’로 키워가려 했다는 ‘역사적 지령’이라고 말한다.
‘북조선에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1945년 9월 21일자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평양의 소련군정은 본격적으로 북한에 꼭두각시 정권 창출에 돌입했다.
소련군정은 먼저 스탈린의 치밀한 공작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김일성을 내세워 1946년 2월 8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모태가 되는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소련 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는 1946년 3월 5일,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발표 하며 사실상의 정부역할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북한에 실질적인 정부가 수립된 것은 1948년 9월 9일이 아니라 해방된 지 6개월 후인 1946년 2월 8일이다. 6개월 만에 정부가 수립 된 것은 철저한 사전 계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역사 왜곡이 민족과 역사 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짓는 행위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토지개혁 실시에 대해 소련군정의 베레테프 정치사령관(북한정권 창출의 주인공)은 “소련군정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기획과 연출을 하고 당 대회에서 이를 토론한 후 결정하게 했습니다. 인민들의 자치기관인 인민위원회가 집행하도록 하는 형식을 취했지요”라고 증언했다. 연출은 소련이 하고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는 일개의 광대였다는 말이다. (평양의 소련군정 참조)
이렇게 보면 평양의 김일성 정권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철저하게 꾸며진 소련의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한 소련의 꼭두각시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련 군정은 사전에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실질적 정부인 인민위원회 만들기에 이어 국가통치기구의 기본 조건이 되는 헌법 만들기와 내각구성에 들어갔다.
소련군정은 1947년 말, 국호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정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제정에 착수했고, 초대 내각도 소련의 각본대로 짜나갔다. 그러니까 국호, 헌법, 내각 모두가 소련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스탈린의 치밀한 공작에 의해 만들어진 백퍼센트 소련의 위성국(공산 식민지)임이 들어났고, ‘국가정통성’ 시비는 여기서 이미 결말이 난 것이다.
심지어 1945년 10월 14일 평양 소련군 환영대회를 계기로 가짜 김일성 영웅 만들기를 본격화한 소련군정은 김일성의 연설 원고는 물론 복장까지 임의대로 만들어 제공했고, 김일성의 광대놀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 밖에 1948년 2월 8일 거대한 創軍式(창군식)과 함께 조직된 북한 人民軍, 1948년 4월 말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치지도자 연속회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1946년과 47년에 열린 1, 2차 미소공동위원회 모두가 소련군정의 치밀한 기획과 연출에 의해 진행되었다.
어느 것 하나 김일성과 ‘북조선 인민위원회(사실상의 북조선 정부)’ 임의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고, 김일성의 一擧手一投足(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한 소련군정의 감시 하에 있었다.
오늘의 북한은 이렇게 태어났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忠犬(충견) 노릇을 톡톡히 해낸 대가로 북한의 통치자가 돼 주인(소련) 뺨치는 공산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소련의 북한 위성국 만들기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해 볼 것은 소련의 북한공산화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남북정치지도자 연속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다. 이 문제는 ‘소련의 흉계 (3)’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소련의 흉계 (2), 소련의 가짜 김일성 만들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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