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 모스트의 지혜2
-홍경흠
모스타르 먹구름은 네레트바 강이 넘치도록 소낙비를 퍼부었다 강이 범람할 때마다 풀이 쓰러지는 소리에 죽음을 감지한 뿌리는 숨 쉴 때마다 껍질이 불거지도록 관다발에 힘을 주는데 물살들은 근육량을 늘리며 숨통을 옥죄었다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풀이 기지개를 켜자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은 혹독한 한기를 몰고 와 풀에 맺힌 이슬까지 꽁꽁 얼어붙어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야원 몸은 봄이 오기까지 얼음을 으깨며 검은 피를 뽑아낸다 그러고 보니 풀을 벌떡 일으킨 것은 풀이다
풀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세파에게 하루하루를 부표처럼 떠서 그 경계선을 허물었다 길이 트이고 웅크리고 있던 울음소리도 사라졌다 세력이 강해지면 누구나 자기밖에 모르는 것을 알기에 속으로 쑥쑥 자라며 예사로 사랑했다
풀은 오늘도 무늬를 만들고
-시인수첩, 2018, 봄호,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