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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History] 
 
작성일 : 13-09-08 17:53
2) 현대문명의 뿌리
 글쓴이 :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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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불, 선, 기독교의 뿌리종교 신교(神敎)
 
1) 유교의 뿌리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하였다. '나는 기술을 한 것이지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공자는 누구의 사상을 기술했느냐,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 즉 중니(공자)는 요순의 가르침을 기술했으며 문무의 도를 법으로 삼아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요순의 도를 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고손자로서, 황제헌원이 현효를 낳고 현효가 제곡고신을 낳았다. 이 제곡고신의 아들이 바로 요임금이다.
 
황제헌원은 사기 13권을 보면,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라 해서 동방의 백민에서 출생을 했다고 되어있다. 환단고기에 보면, 황제헌원은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때 이복형인 신농씨와 함께 동이족에서 분파해 오늘날 중화족의 정신적 시조가 된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맹자가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遊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즉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에서 살다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제풍, 부하, 명조는 모두 동이족의 땅이었다. 서경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라 해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임금을 뵈었다'는 구절이 있다. 사근동후(肆覲東后)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후(東后)는 단군왕검을 말한다. 즉 고조선의 제후 순은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지역의 산동성 일대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한 은족(殷族)이 전형적인 동방조선족 계열의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중국학자 서량지나 임혜상도 말하고 있다.

2) 불교의 뿌리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으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만든 불교를 최초의 불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초대 구류손 부처, 2대 구나함모니 부처, 3대 가섭 부처가 있었다. 석가 부처는 네번째 부처이다. 그런데 이 전불(前佛)시대의 유적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다.
 
◆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킨다.
 
◆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모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동용궁(月城東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그 곳은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본사(本師) 석가불은 제4존불(尊佛)이며 가섭불은 제3존야(第三尊也)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시대에 이곳이 불국사(佛國寺)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다. 하나 더 든다면 화엄경에 바다 건너의 동방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화엄경>에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불교의 대웅전(大雄殿)은 본디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시던 대시전(大始殿)이었다.
 
'대웅(大雄)'이란 뜻은 큰 스승이란 뜻이다. '환웅(桓雄)은 광명의 스승'이란 뜻이다. 太白逸史(태백일사)의 三神五帝本紀(삼신오제본기)중에서 五帝說(오제설)에 '환웅을 일러 대웅(大雄)'이라 하였으니 불가佛家의 대웅전(大雄殿)이란 본래 환웅전의 별칭으로 환웅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본래 우리나라 밖에는 없는 것으로 아주 극소수 존재하는 외국의 대웅전은 근대에 이르러 우리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역사가 왜곡되고 신교(神敎)가 쇠퇴하면서 대웅전의 환웅 신상은 점점 부처상으로 바뀌었으니, 현대까지 산신각에 주신으로 모셔져 있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단군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신상마저 부처상에 그 주신(主神)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환웅전이 대웅전이 된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유서깊은 사찰에는 아직도 대웅전을 제외하고도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명부전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우리 신교(神敎)의 흔적이라 하겠다.
『태백일사太白逸史』<신시본기神市本紀>에 불상이 처음 들어오자 절을 세워 대웅이라 칭했다. 이것은 승도들이 옛 명칭을 세습한 것으로 본래 승가의 말이 아니었다. 또 이르기를 승도와 유생들이 모두 낭가에 예속되었다 하니 가히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다. <太白逸史』<神市本紀>

3) 도교(道敎)의 뿌리
일반적으로 중국의 도교는 황노교(黃老敎)라고 한다. 황제는 그 혈통이 우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갔다. 갈홍(葛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부연하자면 일찍이 황제는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서기전 2707-2599) 때, 배달국의 수도인 청구(靑邱: 오늘날의 요령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삼청궁(三淸宮)에 들러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를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황제 학문의 맥 자체가 우리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계미(B.C. 518년)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의 성(姓)은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先祖)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
이것은 노자 역시 황제와 더불어 동이족이며, 노자의 성은 원래 한씨로서 李耳의 李는 木의 子, 즉 東方의 子란 뜻이다. 이렇게 도교의 원뿌리도 우리나라 신교(神敎)에서 나왔다.
 

4) 기독교의 뿌리
슈메르 연구학자인 S.N 크래머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에서 지적했듯이, 서양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문명은 슈메르 문명이다. 이 슈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삼성기전 하편(三聖記全 下篇)을 보면 환국에는 12환국이 있었는데, 그 중 바이칼호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과 우루국(虞婁國, Ur)이었다. 수밀이국과 우루국 사람들이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가서 문명을 일으켰다. 당시 슈메르 민족이 사용하던 설형문자는 태호복희씨가 사용했던 8괘와 흡사하며,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였다고 한다.
 
서양 유대교 문화의 뿌리되는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로 슈메르 문명이 자리잡고 있던 갈대아 우르(Ur)이다. 그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서기전 1950년경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강을 넘어온 사람'의 뜻으로 헤브루인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 유대족이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인과 근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서양의 모체 문명의 뿌리는 바로 우리 환국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슈메르의 종교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 유적들은,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문화가 환국의 후예인 슈메르인들의 삶과 신앙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슈메르의 지구랏이다. 이처럼 서양의 종교도 그 원뿌리를 신교(神敎)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의 5경인 구약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쓰여진 제사음식.性행위.종족번식.사회규율 등의 율법은 그 제정 유래 및 각 法條의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함무라비法과 같다고 한다. 함무라비法의 기원은 바로 인류최초의 법전인 수메르법전이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거의 같다.
 
오행 
木: 유(儒)
金: 불(佛)
선(仙)
水: 동선(東仙)
火: 서선(西仙)
도의 전공분야
유지범절(凡節)
불지형체(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우주 주재자
상제님
미륵 천주님
옥황 상제님
백보좌 하느님
목적(目的)
대동(對同)
극락(極樂)
태청(泰淸)
천국(天國)
교리강령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삼극
오황극
(五皇極)
일태극(공)
(一太極(空)
십무극(十無極)
(三位一體)
무극/태극/황극
법신/보신/화신
옥청/상청/태청
성부/성자/성신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말하기를 풍류라 한다.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종교를 일으킨 연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유 불 선 삼교를 이미 자체 내에 지니어 모든 생명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감화한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온 즉 효도하고 나아간 즉 나라에 충성하니, 그것은 노사구(공자)의 교지(敎旨)와 같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하염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교지와 같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敎化)와 같다.
 
 
불교,유교,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 우리 민족의 고유 종교와 사상은 바로 신교(神敎)이다. 신교(神敎)는 본래 우리민족의 국교였다. 신교(神敎)는 이신설교(以神說敎)의 준말로써 신의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으로 신교(神敎)문화는 한마디로 신(神)과의 교감과 제사문화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바로 신교(神敎)이다. 이 신교(神敎)가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신교(神敎)가 유불선(儒佛仙)의 모체종교라는 점이다. 유불선이라는 종교가 신교(神敎)에서 가지를 쳐 뻗어나갔던 것이다.
 
신교(神敎)의 기원은 초대 환인(桓仁)께서 천산(天山)에서 삼신상제께 천제(天祭)를 지내면서부터 비롯한다. 그 때는 제정일치(祭政一治) 시대로서 환인(桓仁) 자신이 정치적인 군장이면서 프리스트(Priest-성직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 환인(桓仁)께서는 전 백성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아 통치를 했는데, 그 구심점이 바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드리는 천제(天祭)였다. 천제(天祭)는 3월 16일과 10월 3일 두번에 걸쳐서 지냈다.
 
하늘에는 조화신(造化神)·교화신(敎化神)·치화신(治化神)의 삼신(三神)이 있고, 땅에는 진한·번한·마한의 삼한三韓이 있고 그리고 삼신의 생명이 인간 몸에 들어와 이루어진 것이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이다. 하늘에는 삼신(三神), 땅에는 삼한(三韓), 인간에게는 삼진(三眞)이 있다! 이것이 신교(神敎)문화의 핵심 주제이다.
 
성명정性命精이라는 것은 하늘의 조화신,교화신,치화신, 삼신三神이 그대로 내몸속에 들어와 화化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 몸에서 작동이 될 때는 심기신心氣身이다. 즉 체용體用 관계로 해서, 본성性이 작동을 하면 그게 마음이고, 우리의 목숨, 명命이라는 것, 라이프, 생명이라는 것은 기氣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이고, 정精이라는 것은 우리 몸(身)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주라는 것은 곧 정精을 생산하는 과정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내 몸에서 정精이라는 것은 신장腎腸의 수기(水氣)를 중심으로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온 몸에 정精(진액)이 다 들어있다. 머리에 있는 골수도 정精이고, 오장육부에 정精이 다 들어있다. 이런 피, 우리가 삼키는 침도 그게 다 정精(진액)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精이라는 것은 굉장히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심기신心氣身이 구체적으로 작동을 해서 용用하는 것이 감식촉感息觸이다. 감感이라는 것은 느끼는 것, 식息이라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다. 기氣라는 것은 호흡을 통해서 작동이 된다. 그 다음에 우리 몸이라는 것은 촉감을 통해서 실지 느낀다. 그래서 성명정, 심기신, 감식촉의 이 아홉 개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 인성론(人性論)에 대한 모든 개념이 다 정리된다.  
 
또한 여기에서 유,불,선 삼교일체(三敎一體) 사상이 성립된다. 즉 모든 육체적 감각(욕망)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대인(大人)군자를 추구하는 사상이 유교로,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로,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생(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이 도교가 되었다.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天符經), 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환국 다음에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三一神誥)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參佺戒經)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옛 부터 삼신상제께 천제를 지내던 장소는 아사달(阿斯達)이었다. 아사달에서 '아사'라는 말은 최초라는 뜻과 최고라는 뜻이 있다. 또 '달'이란 땅을 뜻한다. 흔히 양달 응달이란 말을 많이 쓴다. 양달과 응달은 양지 바른 땅과 그늘 진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사달 하면 최고의 땅, 최초의 땅을 가리킨다. 또 아사달은 최초, 최고의 땅으로 수도(首都)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수도가 위치했던 하얼삔, 백두산, 장당경 모두를 아사달이라고 했던 점을 생각하면 된다.
 
이 아사달에 소도(蘇塗)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아사달은 후세에는 소도(蘇塗)라고도 불렸다. 소도에서 지내는 제사의 대상은 우주의 절대자인 삼신상제였다. 부여에서는 이것을 영고(迎鼓)라고 했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성조께서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굉장히 많다. 몇가지 예를 들면, 5세 구을단군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계해 2년(B.C.2098) 5월 황충(蝗蟲:메뚜기)의 떼가 크게 일어 온통 밭과 들에 가득 찼다. 단제께선 친히 황충이 휩쓸고 간 밭과 들을 둘러보고는 삼신에게 고하여 이를 없애주기를 비니, 며칠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6세 달문단군 때에는 '임자 35년(B.C.2049) 모든 한(汗:지방 통치자)들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여 삼신을 구월산(九月山)에 제사케 하고'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11세 도해단군 때에는'경인 원년(B.C.1891) 단제께서는 오가(五加)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를 설치케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마니산은 원래는 마니산이 아니라 마리산이다. 마리는 머리(首)를 뜻한다.
초대 단군이 여든여덟살 되던'무오 51년(B.C.2283)에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을 강화도에 보내서 삼랑성을 짓고 마리산에 제천단(祭天檀)을 쌓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화도 마리산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제천단이다.
 
 
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출처: 세계일보 - 2011년7월15일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 2003년 03월 07일
 

전 미국 부통령 엘고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며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혁명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발전 기여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19일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

 
세계적인 석학 하이데거가 프랑스를 방문한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 교수에게 "내가 당신을 초대한 이유는 당신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명해진 철학사상은 바로 동양의 무(無) 사상인데, 동양학을 공부하던 중, 아시아의 위대한 문명 발상지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평화적인 정치를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아시아 대륙을 통치한 단군시대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동양사상의 종주국인 한국인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도 무(無) 사상을 동양에서 배웠으며, 그 한줄기를 이용해 이렇게 유명해졌지만, 아직 당신들의 국조 한배검님의 천부경은 이해를 못하겠으니 설명을 해 주십시오."그렇게 말하면서 천부경을 펼쳐 놓았다고 한다.
한국의 유명한 서울대 철학과 교수이니 당연히 천부경 철학을 잘 알고 있으려니 했던 것이었다. <한국전통사상 연구소 문성철 원장 증언>
 
 
 
한국의 사대주의 지식인들과 민족주의
                               이화여대 강철구교수님 글
한국 지식인들이 서양학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요사이 일만이 아니다.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높다. 민족주의는 세계화 시대에는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배타적이며 폐쇄적이라고도 하고 나치의 파시즘과 같이 독재적이며 약자를 억압하는 이념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이제 민족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민족과 민족주의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서양학자들의 글을 몇 자 적당히 읽고 떠들어대는 소리다.

우리 입장에서 정말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모두 1980년대에 서양에서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 이론에서 비롯한다. ‘근대주의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어네스트 겔너나 에릭 홉스봄 같은 영국 학자들이 대표다. 서양의 민족주의 연구자들 다수가 이 방향을 따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민족은 길어야 200년의 역사 밖에 갖고 있지 않다. 18세기 말부터 자본주의 발전이나 산업화라는 근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민족이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주장이다. 이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역사 속에서 유혈과 전쟁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주장이 옳은 주장일까?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엉터리 주장이고 서양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이론이다. 우선 민족의 역사는 이들의 주장보다 훨씬 길다. 유대민족 같이 수천 년 되는 경우도 있고 수백 년 되는 경우도 많다.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과의 경쟁 속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민족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과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분명히 나타난다.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이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
 
유럽에서 19세기가 민족주의의 시대가 된 것은 산업화가 나라들 사이의 경쟁을 더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산업화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힘의 차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민족정체성은 매우 강인한 힘을 갖고 있다. 민족의 종족성이나 언어, 문화, 종교, 관습,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 그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몇 세대씩 민족정체성이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다종족으로 구성된 많은 유럽국가에서 19세기에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그것이 많은 정치적 분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화로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국가 안의 주된 종족이 다른 소수 종족들을 더 강하게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언어나 문화, 역사 해석마저 강요하니 반발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원인을 살피지 않고 민족주의가 분란만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민족이 얼마 안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인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족이 쉽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또 지금의 세계화 시대는 그야말로 모든 세계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대가 아니다. 약소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억압과 착취가 더 강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니 이런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면 되었지 약화될 수가 없다.
 
현재 영국과 미국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근대주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이들 나라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강력한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민족주의를 주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진국의 민족주의는 자기들의 세계 지배 야욕에 방해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민족주의를 억압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데올로기로 모는 것은 겔너나 홉스봄 같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이들은 동유럽 출신자들로 나치독일 민족주의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강대국들의 파괴적 민족주의와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주를 지키려는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주의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론을 우리가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황당무궤한 일인가. 그것은 진리도 아니고 보편타당한 원리도 아니다. 그것은 후진국들과 약소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학문적인 무기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런 잘못된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학문이 자주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로서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경제력으로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근접했지만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수준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민족을 통합하고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아직도 매우 중요한 이념이다. 섣부른 해체는 금물이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주의가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일 필요는 없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나 개방경제와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의 쓸 데 없는 간섭을 막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한국사회에서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민족주의 탓으로 돌린다. 물론 한국인들이 다른 아시아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멸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일로서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또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든가 한국이 다민족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민족은 핏줄로만 연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여러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가 긴 역사 속에서 그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고대에 여러 종족의 핏줄이 섞였다 해도 그것 때문에 한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신부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다민족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민족사회라는 것은 여러 민족이 함께 국가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각각의 민족이 고유의 민족적 성격을 계속 유지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다민족사회로 갈 수 있는 싹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우리보다 더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인들이 즐겨 말하는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미국식 이름일 뿐이다. 두 개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사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이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그런 이상에 현혹되어 현실을 잊는다면 결코 외세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족주의는 낡은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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